경북 산불 이재민, 한달째 떠돌이 생활
이재민 3700여명 보금자리 잃어
5월 말이나 돼야 임시주택 완비
경북 안동시 일직면 권정생어린이 문학관 주차장에 들어선 산불 이재민 임시주거시설에는 24일에도 짐보따리를 푸는 주민들로 어수선했다. 모듈러주택이 들어설 수 있는 부지가 확보돼 있어 임시주거시설이 가장 빨리 설치된 곳이다. 30㎡ 크기의 모듈러주택 20개 동이 2층으로 조립돼 있다. 계단으로 사용하는 2개 동을 제외하면 18개 동에 이재민들이 입주해 생활한다. 지난 18일 4가구 7명 입주를 시작으로 속속 주민들이 들어오고 있다..

일직면 운산리 주민 김용식(66)씨는 지난달 25일 밤 산불로 보금자리를 잃었다. 김씨는 “그날 밤 10시쯤 이웃주민들과 마을회관에 잠시 대기하다 대피명령이 내려져 승용차 등에 나눠 타고 마을을 떠났다”며 “대부분 주민들이 몸만 겨우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김씨는 “첫날 영호초등학교 서부초등학교 체육관 리첼호텔 등을 떠돌다 한달 만에 마을 인근으로 올 수 있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24일 입주한 김씨의 짐은 이불보따리와 작은 박스 하나가 전부였다.
인근 일직면 명진2리에도 이날 임시주택 19개 동이 설치돼 안동시내 대피시설을 떠돌던 이주민들의 이사가 한창이다. 이재민들은 침대와 가구, 가재도구를 옮기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외부 배관공사가 지금도 진행 중이어서 임시주택을 당장 사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임시주택 건너편 기존 마을에는 대형 중장비가 불에 타 폭삭 내려앉은 주택의 잔해물들을 철거 중이다.
안동시 길안면 오름실길의 마을도 남아 있는 게 없었다. 아직 철거는 손도 못대는 듯 했다.
이 마을 주택 34채 정도가 화마에 사라졌다. 성한 집은 10여채에 불과했다.
이날 사과밭에서 만나 김우철(63) 이장은 퇴직 후 귀농해 애지중지 키워왔던 8년생 사과나무를 보며 허탈해 했다. 김씨는 “한창 사과가 많이 열리는 나무인데 산불 연기와 열기에 그을려 꽃은 고사하고 싹도 틔우지 못한 채 말라가고 있다”며 “150여 그루의 사과나무를 모두 베어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그는 타다 남은 집안 가보인 현판을 어루만지며 “10여칸의 집이 불에 타 조상을 뵐 면목도 없게 됐다”며 “사과밭에 나와 보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멍한 상황이고 모든 게 타버려 라면이나 빵으로 대충 끼니를 떼우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달 25일 밤 이웃주민들과 대피해 현재 한달째 30㎞ 이상 떨어진 안동시내에서 출퇴근하고 있다. 60여명의 이웃주민들은 친척집이나 대피시설로 뿔뿔이 흩어져 잘 볼 수도 없다.
그는 “마을과 농장이 가까운 곳에 임시주택이 설치돼야 주민들도 돌아 올 수 있다"며 "임시주택 설치공사는 이제 겨우 터닦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산불이 마을을 덮치던 날 어르신들과 함께 승용차에 나눠 타고 불길을 뚫고 길안중학교로 피했다가 다시 안동시 실내체육관으로 옮겼다.
지난달 22일 경북 의성에서 발생해 안동 청송 영양 영덕으로 번진 산불로 보금자리를 잃은 이재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임시주택이다. 기존에 살던 마을과 농장 인근에 컨테이너라도 하나 지원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대피생활 한달 째를 넘기면서 이재민들의 몸과 마음이 지쳐가고 있지만 임시주택 설치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경북에서는 초대형 산불로 주택 3819동이 탔다. 대부분이 다시 지어야 할 정도로 전소됐다.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도 3700여명에 달했다. 이들은 2776동의 임시주택을 요청했다. 유형별로는 임시조립 2587동, 모듈러 189동이다.
임시주거시설은 지역별 여건에 따라 다르지만 5월까지 전량 공급을 마칠 계획이다. 경북도는 4월까지 1130동을 공급하고 5월까지 1646동을 설치 완료한다. 안동과 의성은 이달 말까지 879동과 168동을 설치하는 등 속도를 내고 있으나 영양 청송 영덕 등은 상대적으로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모듈러주택은 189동을 주문 완료했고 오는 5월 15일까지 전량 공급한다.
경북도는 임시주택과 별도로 약 10㎡ 크기의 컨테이너를 임시주택 부속창고 형태로 피해주민들에게 특별 지원한다. 주거용품을 제외한 물품 등을 보관할 수 있는 임시주택 부속 창고는 5월 말까지 공급된다.
이철우 경북지사는 24일 대형산불 피해대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어려운 주거환경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고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행정과 예산을 집중해 피해 주민들의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세호 기자 seho@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