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 “신흥국 부채 위기” 경고
“자국 관세인하가 돌파구”
신흥국과 개발도상국들이 부채 급증과 성장 둔화, 무역 질서의 혼란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인드미트 길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25일(현지시간) “자국 관세 인하가 경제 회복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하며, 이들 국가의 적극적인 무역 개방을 촉구했다고 로이터통신이 26일 보도했다.
길 이코노미스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규모 관세 조치 이후, 선진국 경제성장 전망이 빠르게 하향 조정되고 있으며, 개발도상국들 역시 타격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1일(현지시간)부터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춘계 회의에서는 미국이 10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부과한 관세와 이에 대한 중국, 유럽연합(EU), 캐나다 등 주요국의 보복 관세로 인한 경제적 충격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IMF는 지난 22일 미국, 중국 등 대부분 국가의 경제성장률 전망을 하향 조정했고, 추가적인 무역 갈등이 발생할 경우 성장세가 더 둔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IMF는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2.8%로 전망했는데, 이는 지난 1월 전망치보다 0.5%포인트 낮은 수치다.
세계은행은 6월에 자체 경제전망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나, 길 이코노미스트는 이미 주요 경제학자들의 컨센서스에 따르면 성장과 무역 전망 모두 크게 하향 조정됐다고 밝혔다. 특히 4월 2일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발표 이후, 무역 불확실성 지수는 10년 전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급등했다.
길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충격은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나 코로나19 팬데믹과 달리 정부 정책에서 비롯된 만큼 정책 변화로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위기는 20년 전 약 6% 수준이던 신흥국 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가운데 발생해 성장 둔화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며 “글로벌 무역 증가율도 2000년대 8%에서 현재는 1.5%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원래도 좋지 않던 상황에 갑작스러운 둔화가 겹친 셈”이라며 “좋을 때는 신흥국의 외국인직접투자(FDI)가 GDP의 5%였지만 지금은 1%에 불과하다”며 “포트폴리오 투자와 FDI 모두 줄어들고 있다”고 밝혔다.
부채 문제도 심각하다. 그는 현재 약 150개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의 절반가량이 채무 상환 불능 상태이거나 그 위험에 처해 있으며, 이는 2024년의 두 배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세계 경제가 더 둔화되면 이 비율은 더욱 높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신흥국의 순이자 지급액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현재 12%로, 2014년의 7%에서 크게 증가해 1990년대 수준으로 회귀했다. 저소득 국가의 경우 이 비율이 10년 전 10%에서 현재 20%로 두 배 상승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생전에 2025년을 ‘희년(Jubilee)’으로 선포하며 세계 최빈국들의 부채 탕감을 강력히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영국의 해외 원조 축소 이후 열린 이번 IMF와 세계은행 춘계 회의에서는 실질적인 부채 감면 논의가 지지부진했다고 가디언지는 27일 전했다.
IMF에서 미국은 최대 지분국으로, 약 16.5%의 의결권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IMF가 관세 인하를 해법으로 제시한 것은 미국의 입장이 깊숙이 반영된 결과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