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일괄타결 향해 한미 통상실무협의 본격 시동
조선 에너지 자동차 등 협력강화 지렛대로 관세폐지 여부 주목
환율은 별도 협의 … 방위비·FTA 개정·소고기 수입확대 등 변수
정부가 미국의 상호관세 유예조치가 종료되는 7월 초까지 ‘패키지 합의’를 추진하기로 하면서 최대 관심사인 관세부과 폐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방위비 분담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쌀ㆍ소고기 수입 확대 등이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28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이번주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을 방문, 미국무역대표부(USTR)와 실무(technical level) 협의를 갖는다. 정부는 또 다음달 15일부터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장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와는 추가 고위급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상호관세 유예가 종료되는 오는 7월8일 이전까지 관세 폐지를 목적으로 한 7월 패키지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어 대표의 방한을 통해 고위급 중간 점검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어떤 분야와 방식으로 향후 협의를 진행할지는 총리 주재 경제안보전략 태스크포스(TF)와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결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선협력 협상 지렛대 주목 = 앞서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2+2 통상 협의에서 △관세ㆍ비관세조치 △경제안보 △투자협력 △통화(환율)정책 등 4개 분야를 중심으로 논의해나간다는데 합의한 바 있다. 7월 패키지에도 이와 관련된 내용들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우리 측이 한국의 에너지 안보 제고, 미국의 조선업 재건을 위한 양국의 상호 기여 방안 등을 제안했기 때문에 추후 이 분야에 대한 상호 협력 강화 가능성이 높다.
특히 조선업 협력의 경우 미국의 관심이 커 다른 의제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향후 관세 협상 과정에서 반도체ㆍ배터리 등 첨단핵심 산업과 공급망 구축에 직간접적인 파생효과가 기대된다. 2+2 협상에 관여했던 정부 관계자는 “조선은 미국 안보의 핵심산업이면서 미국은 열위, 한국은 우위에 있는 산업”이라며 “동맹인 한국은 패권 경쟁 리스크가 없고, 신뢰할 수 있다. 특히 빠른 제조 역량을 갖췄다는 점에서 조선업이 향후 협상의 주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환율 정책은 기재부와 미 재무부가 별도로 논의해나가기로 합의했다. 조만간 실무협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밖에 협의 당시 언급이 없었던 방위비 분담금(주한미군 주둔비용 중 한국의 분담액)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쌀ㆍ소고기 수입 확대 등의 문제도 논의될 여지가 있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4일(현지시간)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그 어떤 협상에서도 군대 문제를 다루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협상속도엔 한미 이견 = 한편 우리 정부는 차분하고 신중하게 시일이 걸리더라도 최상의 결론을 도출하겠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차기 대통령 선거가 열리는 6월3일 이후에나 협상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미국의 경우 모든 이슈를 아우르는 신속ㆍ일괄 타결을 시도하고 있어 양측간 합의 시기를 두고 온도차가 감지된다.
우선 미국은 속도전을 강조하고 있다. 스콧 베센트 미국재무장관은 지난 24일 한미 협의 이후 백악관에서 트럼프에게 “한국과 매우 성공적인 양자회의를 했다”며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으며 이르면 다음주 양해에 관한 합의(agreement on understanding)에 이를 것”이라고 보고했다.
미국의 ‘속도전’은 정치사정과도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현재 지지율이 40%대로 임기 시작과 큰 차이가 없지만 역대 대통령 중에는 가장 낮은 지지율이다. 미국의 CNN방송이 27일(현지시간) 트럼프 취임 100일을 앞두고 여론조사기관 SSRS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지지율은 41%에 머물렀다. 아이젠하워 이후 취임한 대통령 가운데 같은 시기 가장 낮은 수준이다. 취임 100일간 137건의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강력한 드라이브를 건 것에 비하면 초라한 결과다. 전세계와의 관세 협상을 통한 결과물이 시급한 건 미국인 셈이다.
우리 정부는 상대적으로 신중한 입장이다. 대선 국면이 맞물려 있어 속도를 내기에도 부담되는 여건이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도 이번 방미 전 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시간이 필요한 경우에는 다음 정부와 잘 협의해서 바통을 이어서 우리 산업계를 보호할 수 있도록 최선 다할 것”이라고 했다.
◆미, 환율정책 논의 제기 = 환율정책이 공식 의제로 설정된 데 따른 미국의 의도를 두고도 논란이 있다. 특히 미국이 상반기 환율보고서 발표를 앞두고 있어 협상 전부터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전쟁에 이어 전세계를 상대로 환율 전쟁을 선포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의 환율보고서 평가 기준은 △150억달러 이상의 대미 무역 흑자 △국내총생산(GDP)의 3% 이상에 해당하는 경상수지 흑자 △12개월 중 최소 8개월간 달러를 순매수하고 그 금액이 GDP의 2% 이상인 경우 등 3가지다. 미국은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 두차례 자국과 교역규모가 큰 상위 20개국을 상대로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한국은 지난해 11월 대미무역 흑자와 경상수지 흑자로 ‘환율관찰 대상국’으로 지정됐다.
환율의제 지정은 미국측이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세·비관세 조치 △경제안보 △투자협력 등 나머지 3가지 분야 협상을 더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다만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환율 문제가 거론된 것과 관련해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부 장관이 먼저 환율 부분은 별도로 논의하자는 얘기를 했다”며 “아직 구체적으로 논의된 것은 아니고 양국의 재무부 간에 실무 협의를 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밝혔다.
◆최상목은 권한대행 재수? = 한편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주 미국 워싱턴DC에서 진행된 ‘2+2 통상협의’에 “협의 과제를 명확히 했고, 논의 일정에 공감대를 형성해 향후 협의의 기본 틀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지난 27일 저녁 귀국한 최상목 부총리는 이날 인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미 통상 협의 성과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같이 답했다.
그는 “불확실성을 줄이고 향후 협의에 있어 질서 있는 협의의 물꼬를 텄다”며 “한국의 정치 일정이라든지 국회와의 협력 필요성 등 고려 사항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자평했다.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경기 부진 상황과 관련해서는 “경기와 민생이 어렵기 때문에 경제를 책임지는 당국자로서 책임감이 무겁다. 다만 1분기 성장률이 예상보다 나빴던 것은 대외적인 관세 충격과 일시적인 요인들이 꽤 많이 있었다”고도 언급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선 출마론과 관련해선 “가정을 갖고 제가 말씀드릴 사항은 아니다”라며 “주어진 소임을 헌법과 법률에 따라서 수행할 뿐”이라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한 총리가 내달 4일 이전 공직에서 물러나 대선에 출마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5월4일은 6.3대선 공직자 사퇴시한이다.
이렇게 되면 최 부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6·3 대선까지 국정을 책임져야 한다. 앞서 최 부총리는 지난해 12월 한 총리 탄핵소추안 의결 직후 권한대행직을 넘겨받아 석 달가량 국정을 운영했다. 헌정 사상 최초인 ‘권한대행 부총리’를 두 차례나 맡을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