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박막 트랜지스터가 뭐지?
현대인들은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 화면을 보지 않는 날이 없다. 우리가 보통 ‘액정’이라고 부르는 평판 디스플레이는 실제 액체결정(LCD)으로 구동되는 것이 널리 사용되다가 요즘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구동되는 것이 점차 늘고 있다. 눈으로 봐서는 잘 구별이 되지 않는 이 두가지 디스플레이 기술은 그 원리가 전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박막 트랜지스터(TFT)를 사용하여 화면의 픽셀을 구동한다.
일반적인 반도체 소자인 CPU GPU DRAM 등은 모두 실리콘 웨이퍼에 미세 패턴으로 회로를 새겨서 제작한다. 실리콘 웨이퍼는 직경 30cm의 순수 단결정 실리콘 기둥을 얇게 잘라서 만든 원형기판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런 반도체 소자는 모두 단결정 실리콘으로 만든다고 할 수 있다.

디스플레이 패널도 픽셀을 구동하기 위해서 반도체 트랜지스터가 필요하다. 하지만 디스플레이에 사용하는 트랜지스터는 보통 가로 세로가 각각 2m가 넘는 유리기판에 수십 마이크론 크기인데, 실리콘 박막으로 만든 TFT를 사용한다. 실리콘을 포함하는 화학물질인 실란(silane, SiH₄) 기체를 유리기판에 뿌리면서 열이나 플라스마로 수소가 떨어지는 화학반응을 일으켜 실리콘이 유리기판 위에 증착되도록 하는 화학기상증착(CVD) 방법을 사용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박막은 실리콘 웨이퍼의 단결정과는 거리가 먼 비정질(amorphous) 구조에 수소를 다량 함유하고 있어서 단결정 실리콘에 비해 전기적 특성이 현격하게 떨어진다. 하지만 넓은 유리기판에 실리콘 박막을 증착하는 다른 방법이 없다. 다행히 평판 디스플레이의 시작을 연 LCD는 비정질 실리콘 박막 트랜지스터로 구동해도 큰 문제는 없다. LCD의 구동 원리상 전압만 잘 걸어주면 되고, 전류는 미량 흐르기 때문에 전류 특성이 떨어지는 비정질 실리콘 트랜지스터를 사용해도 되는 것이다. 이렇게 박막 트랜지스터로 구동하는 액정화면이 바로 TFT-LCD다.
LCD와 OLED는 완전히 다른 기술
여기서도 전류 특성이 좋은 실리콘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니 픽셀에 전달될 전기신호를 처리하는 주변회로다. 액정에 전압만 걸어주는 비정질 실리콘 TFT와는 달리 다양한 전기신호를 다루는 주변회로를 위해 비정질 실리콘을 다결정(polycrystalline) 실리콘으로 바꾸는 기술이 필요하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비정질 실리콘 박막을 녹는점까지 온도를 올렸다가 내리는 것이다. 하지만 비정질 실리콘 박막과 유리기판의 녹는 온도 차이가 크지 않아서 기판유리가 변형될 위험 때문에 사용하지 못한다. 대신 강한 레이저 빔을 사용해서 비정질 실리콘의 표면만 살짝 녹여 다결정 실리콘으로 만드는 방법이 개발되었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저온 다결정 실리콘(LTPS)으로 만든 주변회로와 비정질 실리콘 TFT로 픽셀 구동 패널 기술을 결합해서 TFT-LCD 텔레비전 패널이 만들어진다.
최근에 등장한 OLED 디스플레이는 얼핏 보기에는 LCD와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LCD의 전압 구동과는 다르게 OLED 픽셀은 전류를 흘려서 구동한다. 앞서 언급한 비정질 실리콘 TFT는 전류 특성이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래 전류를 흘리면 특성이 변한다. 따라서 OLED 디스플레이에 사용할 수 없다. OLED 픽셀을 구동하기 위해서는 유리기판 전체에 형성된 비정질 실리콘 박막을 LTPS 박막으로 바꿔준 후에 TFT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2m가 넘는 유리기판 전체에 강력한 레이저 빔을 쬐어주려면 전체 유리를 세기가 일정한 길쭉한 레이저 빔으로 훑어야 하는데 광학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만일 여러번에 걸쳐서 전체 면적을 훑게 되면 경계 부분에 특성이 다른 LTPS가 만들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기술적 어려움을 극복한 기업은 LTPS를 이용한 OLED 디스플레이를 개발 판매하고 있다.
디스플레이도 반도체 기술이 중심
LTPS 기술 발전과는 별도로 아예 실리콘이 아닌 다른 물질을 사용하는 박막 트랜지스터 기술의 개발도 이루어졌다. 특히 인듐-갈륨-아연 산화물 (IGZO) 박막은 유리기판에 증착하면 비정질이 되지만 비정질 실리콘에 비해서는 월등히 뛰어난 전류 특성을 나타낸다. 따라서 별도로 다결정 형성을 위한 레이저 공정이 필요없다는 이점이 있다. 이런 물질로 만든 박막 트랜지스터를 산화물 TFT라 하고, 공정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까다롭지만 이미 대형 OLED 디스플레이에 사용된다. 최근에는 LTPS와 산화물 TFT의 장점을 결합한 기술도 첨단 OLED 디스플레이에 등장했다.
우리가 매일 접하고 있지만 미처 반도체 소자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는 디스플레이도 실은 반도체 기술이 그 중심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