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미국 약한 고리, 무역협상 지렛대로

2025-04-29 13:00:02 게재

트럼프행정부는 4월 2일 180여개국을 대상으로 상호관세율을 발표했는데 너무 높은 관세율에 세계가 대혼돈에 빠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무역질서는 자유무역을 지향해 왔기에 관세는 과거 유물처럼 각인됐다. 1929년 대공황으로 세계는 농업 등 자국산업 보호를 위해 통화가치 절하와 함께 관세정책을 활용했는데 1930년 미국에서 발효된 스무트헐리 관세법이 대표적이다.

관세부과는 세계교역을 위축시켜 대공황을 더욱 악화시킨 경험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후 자유무역 회복을 위한 논의가 활발했고 그 결과물이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인 GATT체제다. 이후 우루과이 라운드를 거쳐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의 설립으로 세계 자유무역 질서가 완성됐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관세 부과로 80여년 동안 이어져온 자유무역 질서는 한순간에 무너질 위험에 처해 있다.

트럼프 고율관세로 80여년 이어져온 자유무역 질서 무너질 위기

관세부과는 교역 축소로 한 나라 경제의 후생을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물가상승을 유발하고 소비둔화를 가져와 경기침체를 초래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경제학의 정설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행정부가 이처럼 높은 관세를 부과한 이유는 도대체 뭘까? 첫째는 관세 부과를 지렛대 삼아 리쇼어링을 포함한 해외 산업자본을 미국에 유치해 제조업 부활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그동안 미국 경제는 금융 등 서비스업과 첨단산업 중심으로 변모해옴에 따라 제조업 기반이 취약한 구조이다. 이러한 경제구조하에서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198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중산층 기반이 약화됐는데, 한 때 자동차와 철강산업으로 유명했던 그러나 지금은 쇠락한 러스트벨트 지역이 이를 대변한다. 그래서 제조업 부활을 위해 해외 산업자본을 미국에 유치하고자 관세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부족한 세수를 보전하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감세를 통해 경제성장을 도모하고자 하는데 현재 미국은 재정적자가 심각한 상태여서 국채 발행 확대가 여의치 않다 보니 감세에 따른 부족 세수를 관세로 보전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전략은 시작부터 역풍을 맞고 있다. 우선 미국 금융시장이 먼저 반응하고 있다. 예상치 못한 고율 관세부과와 향후 불확실성으로 주가와 채권이 약세를 보이고 있다. 주가가 하락하면 주식 투자자금이 안전자산인 미국채로 가기 때문에 미국채금리가 하락하는게 보통인데, 10년만기 미국채금리가 관세 부과후 일주일 사이에 0.5%p 가량 상승하는 등 미국채금리는 오히려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또한 미국내 투자자금이 유럽이나 일본 등으로 유출됨에 따라 미달러화는 최근까지 6개국 통화대비 6% 가까이 절하되는 등 달러에 대한 투자자의 신뢰도 상당히 흔들리고 있다.

더군다나 세계 최대 외환보유국인 중국은 미국채를 팔아 미국채금리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으로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에 전략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미국은 자동차 등 자국 산업이 부품을 해외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이폰 등 미국 기업이 해외에서 생산한 완제품도 관세 부과 대상이다 보니 미국 기업의 피해도 예상보다 크다고 판단한 듯하다.

미국의 취약 산업과 재정에 기여하고 있는 부분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트럼프 행정부는 한발 빼는 모습을 보이며 4월 9일 중국을 제외한 57개국에 관세를 90일간 유예하고 한국 등 5개국과 우선 협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제 미국과의 무역 협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무엇보다 우리가 메모리 반도체, 전력, 배터리, 조선 분야 등은 미국과 협력하고 외환보유액으로 미국채에 투자함으로써 미국의 취약 산업과 취약 재정에 기여하고 있는 부분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협상을 최대한 유리하게 이끌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황 성 전 한국은행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