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만에 부활한 ‘보호주의 망령’
히틀러의 경제 실험, 트럼프의 ‘해방의 날’…2025년판 스무트-홀리법 우려 확산

트럼프는 “미국 경제를 외국 의존으로부터 해방시키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조치가 세계 경제를 위축시키고, 미국 소비자에게 직접적인 부담을 전가할 것이라 경고했다. 22일(현지시간)자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 경제 성장률이 2.8%로 둔화될 것으로 예측했다. 미국의 경기 침체 가능성도 50% 이상으로 분석됐다.
이번 조치는 역사적으로도 익숙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1933년,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을 세계화된 질서로부터 ‘해방’시키겠다며 관세 장벽을 높였다. 티모시 W. 라이백은 애틀랜틱(The Atlantic) 최신호에서 히틀러가 외국 상품 수입을 차단하고 독일 경제를 자급자족 체제로 재편하려 했다고 밝혔다. 당시 히틀러는 베를린 스포츠팔라스트 연설에서 외국 의존을 독일인의 자존심 훼손이라 규정하고, 극단적 보호주의 노선을 채택했다.
이 정책의 설계자는 나치당 경제이론가 고트프리트 페더였다. 그는 독일 노동력 수요는 더 이상 외국인에 의해 충족되어선 안 된다고 주장하며, 모든 수입을 제한하고 무역 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하지만 외무장관 콘스탄틴 폰 노이라트는 무역 전쟁을 우려했고, 실제로도 그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히틀러의 관세 인상은 유럽을 충격에 빠뜨렸다. 포시셰 차이퉁은 “밭고랑과 쟁기로 돌아가는 독일”이라 비꼬았고, 뉴욕타임스는 히틀러가 유럽 전체를 상대로 무역 전쟁을 선포했다고 보도했다. 덴마크, 스웨덴, 네덜란드와의 교역은 붕괴됐고, 독일 수출은 급감했다. 농민과 노동자들은 파산 직전에 몰렸고, 산업 생산도 급격히 줄었다. 독일 경제는 회복세를 잃고 다시 후퇴했다.
그런데도 히틀러는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외부와의 단절을 강화하며, 경제 붕괴를 민족주의 강화의 도구로 삼았다. 무역 고립은 정치적 고립과 군국주의로 이어졌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1930년 미국 의회가 통과시킨 스무트-홀리법(Smoot-Hawley Tariff Act)은 수천 개 품목에 평균 20%의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당시 명분도 자국 산업 보호였다. 그러나 이 조치는 세계 무역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대공황을 심화시킨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실업률은 치솟았고, 세계 경제는 마비됐다.
트럼프의 이번 조치가 ‘2025년판 스무트-홀리법’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자국 산업 보호라는 명분 아래 무차별 관세를 강화하며, 시장 논리보다 정치적 목적을 앞세우고 있다. 90여년 전과 똑같은 실수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관세의 전가 효과(Tax Incidence)는 오래전부터 경제학 교과서에 기록돼 있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세금은 결국 소비자가 부담한다”고 썼고, 현대 경제학자들도 같은 결론을 내린다. 관세가 오르면 최종 가격이 오르고, 기업과 소비자 모두 타격을 입는다는 의미다.
실제로 미국 기업들은 원자재 수입 비용 증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소비자들은 높은 물가를 체감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제조업 보호라는 단기적 목표가 글로벌 공급망 붕괴라는 장기적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
히틀러의 관세 실험, 스무트-홀리법이 초래한 대혼란은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다. 그 망령이 2025년 되살아났다. 히틀러의 정책은 독일을 무역에서 고립시키고, 나치 체제를 강화하는 수단이 됐다. 트럼프의 ‘해방의 날’ 정책도 미국을 글로벌 경제에서 단절시키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보호무역주의는 국가를 자립시키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고립과 쇠퇴의 길이다. 히틀러의 독일과 트럼프의 미국은 우리에게 같은 교훈을 던진다.
경제는 폐쇄가 아니라, 협력을 통해 성장한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