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재선 후폭풍…빅테크,규제·통상압박 가중
각종 소송·조사로 시달려
향후 4년도 험로 걸을듯

트럼프 재선이후 미국 빅테크 대표 기업들이 백악관과의 관계 회복에 공을 들였다. 메타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기술기업을 자랑스러워한다”며 환영 메시지를 전했고, 주요 빅테크 CEO들은 대통령 취임식에도 참석했다.
이 같은 저자세에는 이유가 있었다. 트럼프는 대선 유세 과정에서 메타를 ‘국민의 적’이라 칭했고, 그의 지지 기반인 ‘MAGA(마가)’ 세력은 기술 대기업들이 보수 진영을 검열하고 있다고 맹비난해 왔다. 2021년 트럼프의 러닝메이트가 된 J.D. 밴스는 이들 대기업을 “기생적 존재”라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취임 3개월이 지난 지금, 이들 기업이 기대했던 대가를 얻은 것은 거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행정부가 제기한 반독점 소송을 중단할 의사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무역전쟁으로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트럼프 취임 이후 미국을 대표하는 빅테크 5개사(알파벳, 아마존, 애플, 메타, 마이크로소프트)와 반도체 강자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은 총 2조3000억달러, 약 14% 감소했다.
◆관세·무역전쟁 겹쳐 직격탄 =우선 반독점 규제부터 살펴보자. 법무부 반독점국 국장 게일 슬레이터는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을 상대로 진행 중인 두 건의 소송을 인계받았는데, 그중 하나에서 연방법원은 지난달 17일 구글이 디지털 광고시장에서 불법 독점을 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또 다른 소송에선 지난해 검색 광고 시장에서도 독점적 지위를 남용했다고 결론 내렸다. 이에 법무부는 구글의 웹브라우저 ‘크롬(Chrome)’ 매각까지 요구하고 있다.
알파벳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14일부터는 메타가 2012년 인스타그램, 2014년 왓츠앱 인수를 통해 불법적으로 시장 지배력을 유지해왔다며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제기한 반독점 소송의 청문회가 시작됐다. 메타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FTC와 합의 중재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직 진전은 없다.
이 외에도 애플과 아마존은 소송 대상이며, 마이크로소프트와 엔비디아도 조사 선상에 올라 있다.
트럼프발 무역전쟁도 빅테크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애플은 아이폰과 맥 제품의 약 80%를 중국에서 조립하고 있는데, 트럼프가 4월 2일 발표한 상호관세 정책 이후 애플 주가는 한 주 만에 25% 가까이 하락했다. 이후 스마트폰과 PC를 관세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발표로 다소 회복됐지만, 기존의 20% 관세에 따른 가격 인상이 불가피해졌고, 이미 둔화된 판매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엔비디아도 무사하지 않다. 현재 반도체는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돼 있지만, 2024년 기준 매출의 13%를 차지하던 중국 매출에 불확실성이 커졌다.
미국 정부는 엔비디아가 중국에 H20 AI칩을 수출하려면 별도 수출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했으며, 회사는 이로 인해 보유 재고의 가치가 55억달러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틈을 타 중국 화웨이가 AI 반도체 분야에서 입지를 넓힐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아마존 역시 타격이 예상된다. 증권사 번스타인에 따르면 아마존이 미국 내에서 판매하는 상품의 5분의 1은 중국산으로, 고율 관세가 적용된다. 여기에 5월 2일부터는 기존의 소액물품 면세 기준인 800달러 이하 ‘디 미니미스(de minimis)’ 예외 조항도 중국산 제품에는 폐지된다.
◆중국·유럽연합 보복에 경기 불확실성까지 =그러나 트럼프의 통상 압박은 아직 끝이 아니다. 이코노미스트는 번스타인 증권의 마크 슈물릭을 인용, 미국 빅테크가 “보복성 무역 조치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중국은 이미 알파벳과 엔비디아에 대해 규제 조사를 벌이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정부 기관용 PC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제품을 단계적으로 퇴출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중국은 이미 공무원들에게 아이폰 사용을 금지한바 있다.
유럽연합(EU)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트럼프 관세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미국 IT기업에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4월 23일 EU는 애플과 메타에 대해 디지털시장법 위반으로 총 7억유로(약 7억960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이는 최대 가능 금액보다는 낮은 수준으로, 유럽이 무역전쟁 확대를 피하려는 신호로 해석되기도 한다.
간접적인 피해도 우려된다. 쉬인과 테무 같은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는 메타의 광고 수입 중 10%를 차지했는데, 관세 여파로 광고 축소도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클라우드 부문도 영향을 받고 있다. JP모건체이스에 따르면 기업 고객과 스타트업들이 경기 불확실성 탓에 클라우드 계약 체결을 미루고 있다. 제약회사 존슨앤드존슨은 최근 수익성이 낮은 AI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남은 임기 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실리콘밸리를 위해 ‘방패 역할’을 할 가능성도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취임 후 100일간의 흐름만 놓고 보면, 향후 4년은 빅테크에게 쉽지 않은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망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