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가? 웃는 커브, 울상 짓는 OPEC+
침체 우려속 주도권 잃어
7년 ‘공급 부족’ 풀리나
‘콘탱고(contango)’라는 단어를 들으면 탱고 춤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원유 시장에서는 결코 낭만적인 단어가 아니다. 콘탱고는 현재 가격보다 미래 가격이 더 높은 선물시장 구조를 뜻하며, 트레이더들이 원유를 사서 창고에 쌓아두고 비싸질 때 팔도록 유도하는 가격곡선을 의미한다.
최근 석유 시장에서 이 ‘콘탱고’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마찰,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성 관세 발표는 시장에 긴장감을 더했고, 석유수출국기구(OPEC·오펙)와 주요 산유국간 확대 협의체인 오펙플러스(OPEC+)가 5월부터 하루 41만 배럴 증산을 예고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이는 시장 예상치의 세 배에 달하는 규모다.
이로 인해 현물 가격(spot price)은 하락하고 있지만, 석유 선물곡선은 생각보다 복잡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7년 동안 석유 시장은 거의 항상 ‘백워데이션(backwardation)’ 구조를 보여왔다. 이는 현물 가격이 선물보다 높다는 뜻으로, 재고가 부족해 현재 수요가 강하다는 신호다. OPEC+의 감산 정책이 이런 구조를 유지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특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브렌트유(유럽 북해산 원유) 선물곡선이 앞쪽 9개월은 내리막, 이후는 오르막인 미소(Smile) 곡선 형태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30년 데이터에서도 유사한 곡선을 찾기 어려운 사상 초유의 현상이다.
보통 수요가 줄고 공급이 늘어나면 선물곡선 전체가 오르막이 되는 콘탱고 형태가 되어야 맞다. 하지만 지금은 앞쪽은 백워데이션, 뒷쪽은 콘탱고인 기묘한 혼합구조다. 시장은 어디로 갈지 예측이 어려운 상태란 의미다.
물론 수요 우려는 존재한다. 4월 대형은행 씨티그룹 원유 분석가들은 관세 충격으로 인해 유가와 선물 곡선 모두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며, 연말 브렌트유 가격 전망치를 60달러로 낮췄다. S&P 글로벌의 존 핸리는 “공급 확대와 수요 둔화가 맞물리면 콘탱고가 본격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가가 폭락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첫째, 미국 오클라호마 쿠싱 거래소의 원유 재고는 19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둘째, 정유사들의 마진(판매가격과 원가의 차이)이 아직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실수요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에너지 애널리스트인 키트 헤인즈는 “낮은 매장량과 높은 마진 때문에 과거 금융위기나 코로나 때처럼 폭락장이 쉽게 예측되진 않는다. 위험은 보이지만 타이밍은 잡기 힘든 장세”라고 설명했다.
시장 참여자들도 셈법이 복잡하다. 어떤 트레이더는 앞쪽 선물 두 개월만 집중 거래하며 유가를 끌어내리고, 또 다른 이들은 백워데이션 구조에 베팅해 매수 중이다. 반면 후방에서는 오히려 콘탱고에 돈을 걸고 있다. 각기 다른 전략이 시장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결국 가장 긴장하는 쪽은 오펙이다. 백워데이션일 때는 생산량을 조절해 시장을 통제할 수 있지만, 콘탱고가 되면 재고는 트레이더 손에 넘어간다.
라이스타드 에너지의 발레리 파노피오는 “곡선이 오르기 시작하면 OPEC의 재고 통제력이 약해지고, 시장이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불확실성의 한복판에서 결국 춤을 추는 건 트레이더들일까, 오펙일까.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