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자산 팔자" 대만 보험사발 충격
환헤지 실패에 대만달러 하루 5% 폭등 … 원화에도 ‘헤지 수요’ 영향설

대만 달러는 2일 하루 동안 3% 이상 상승한 데 이어, 5일 일시적으로 5% 이상 치솟으며 2022년 이후 처음으로 1달러당 30대만달러 선을 돌파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대만 외환시장의 미달러-대만달러 거래량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대만 중앙은행은 이런 환율 급락에도 뚜렷한 개입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BNP파리바 홍콩지점의 외환 담당자인 왕쥬는 “수출기업들이 패닉 상태이고, 대형 보험사들은 환헤지를 충분히 하지 못한 상태에서 달러화 자산의 손실을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중앙은행이 개입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이 상황이 미·중 무역 협상에 대한 신호로 해석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전문가들은 이번 대만 달러 강세의 핵심 배경으로 대만 생명보험사들의 미국 달러 자산 매도 또는 긴급 환헤지(파생상품을 활용하여 환율을 미리 고정) 시도를 꼽는다. 대만 보험업계는 현재 1조7000억달러 이상의 해외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상당수가 미국 국채 중심의 달러 자산이다. 이처럼 보험사 자산은 대부분 달러로 구성돼 있지만, 보험금 지급 등 부채는 대만 달러로 표시돼 있어 구조적으로 통화 불일치가 존재한다.
그러나 보험사들은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환헤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달러 약세가 본격화되자, 보험사들은 재무 건전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상황에 직면했다.
싱가포르의 외환 트레이더 밍제 우는 “대만 보험사들은 아시아에서 미국 국채 보유 비중이 가장 높은 집단 중 하나”라며, “이번 급등은 환헤지를 하지 않은 보험사들에게는 매우 고통스러운 결과”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대만의 대표적 금융지주인 캐세이금융과 푸본금융의 주가는 각각 6.8%, 5.9% 하락했다. 이들은 각각 대만 1위와 2위 생명보험사인 캐세이생명, 푸본생명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대만 달러 가치 급등은 한국 외환시장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 원화 가치가 빠르게 상승하며 원/달러 환율이 5개월 만에 처음으로 1300원대로 급락한 데에는, 단순한 외국인 매수세나 수급 요인 외에도 대만 보험사들의 원화 선물 매수가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시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대만 보험사들은 달러-대만달러 직접 헤지 비용이 높아지자, 원화를 대체 통화로 삼아 헤지 포지션을 설정하여 원/달러 환율 급락 했다는 해석이다.
이번 사태는 외형상 환율 안정처럼 보일 수 있으나, 대만 보험사들의 자산-부채 불일치 구조가 폭로되어 금융시장 불안을 야기하는 사례로 주목된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