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자금경색으로 치솟는 금융권 연체율
내수부진 장기화와 대내외 불확실성으로 빚을 갚지 못하는 기업과 가계가 크게 늘고 있다. 올해 1분기 4대 주요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에서 상환을 기대하기 어려운 부실채권 규모가 1년 전보다 27.7% 늘어나며 사상 처음으로 12조원선을 넘어섰다. 또한 주로 급전으로 활용되는 은행 신용카드 대출 연체율도 카드사태 막바지였던 지난 2005년 8월과 같은 수준인 3.8%까지 치솟아 2005년 5월 이후 20년 만에 가장 높았다.
지난 1분기 한국경제가 역성장하고 2분기에도 0%대 성장이 예상되면서 이젠 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생존 자체를 고민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기업 대부분(96.9%)이 올해 경제위기 가능성을 염려하는 등 우리 경제가 이미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거나 도달할 것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중소중견기업은 물론이고 대기업도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3년 사이 2배 이상 급증했다.
사상 처음으로 12조원선 넘은 4대 주요은행 부실채권 규모
일부 자영업자들은 “긴 연휴가 더 지옥”이라면서 “대체 휴무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까지 들고 나섰다. 긴 연휴기간에는 해외여행지와 국내 유명관광지로만 사람이 몰릴 뿐 다른 곳에서는 연휴 매출이 평일보다 안 나오는 등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를 고려해 지난 1일 근로자의 날과 토요일(3일) 사이에 낀 2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인천공항에는 해외에서 황금연휴를 보내려는 매일 20만명이 넘는 인파로 넘쳐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월 2일부터 4월 17일까지 공시를 한 상장사 47개사의 단기 차입금 조달규모는 3조764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5.8%나 폭증했다. 단기차입금이 자기자본 10% 이상 증가한 경우만 공시대상인데도 이랬다. 단기차입금은 대부분 운영 자금으로 사용됐다.
자금난으로 기업들의 연체가 증가하자 금융회사의 건전성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은행들이 건전성 유지를 위해 대출문턱을 높이자 가뜩이나 돈줄이 말라 조바심을 내던 중소기업들이 초비상 상태에 들어갔다. 이러다가 대출만기 연장조차 거절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면서 전전긍긍하기 시작했다. 다소 느긋하던 대기업들도 주식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공개와 유상증자, 회사채 발행시장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빚의 그늘은 카드와 보험사에도 드리워 서민들의 급전 창구인 카드론과 보험계약 대출 잔액이 폭증하는 가운데 연체 또한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카드론 잔액은 지난해 이후 계속 증가해 올해 2월 42조9888억원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보험계약 대출 잔액도 역대 최다로 증가했다. 그러나 자영업자 등 취약 차주를 중심으로 카드대금뿐 아니라 카드대출이 제대로 상환되지 않으면서 연체율이 모두 상승했다. 대출받기가 어려워진 취약 차주들이 높은 이자를 감수하고 카드사에서 급전을 빌렸지만 이를 갚지 못하고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9개 카드사의 지난 3월 기준 평균 카드론 금리가 연 15%에 육박, 2022년의 레고랜드사태 수준까지 치솟았다. 금리인하기인데도 연체율 상승으로 대손비용이 증가, 카드론 금리는 당분간 고공행진을 이어갈 것으로 예측된다. 이래저래 서민들의 이자 부담이 더 커질 전망이다.
정부 효율적인 부채관리 대책 내놓아야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린 뒤 석달 이상 연체해 신용유의자(신용불량자)가 된 개인사업자는 이미 14만명을 넘어섰다. 1년 전에 비해 무려 30% 가까이 급증했다. 벌써부터 상환능력이 떨어지는 서민들은 앞다퉈 개인워크아웃(채무조정)을 신청하고 있다.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면 개별 기업의 위기로 그치지 않고 고용과 소득 등 경제 전반으로 불안이 증폭된다. 문제는 2분기 이후 전망이 더 암울하다는 점이다. 미국발(發) 관세전쟁의 영향이 본격화하면 타격을 입을 수출기업들이 증가 연체율 상승세가 가속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건전성 관리를 위해 위험가중자산(RWA)을 줄여야 하는 은행들로서는 자금사정이 나쁜 계층에 대한 금융지원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상환능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 대출을 더 조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최근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RWA 가중치 하향 조정 등 대책 강구에 들어갔다. 그러나 얼마나 효율적인 대책이 마련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현채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