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통제 현실적이어야”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반도체 수출통제를 재고하겠다는 미국 트럼프정부의 방침에 대해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8일 온라인판 기사에서 “옳은 결정”이라며 환영했다. 트럼프정부는 7일(현지시각) 이달 중순부터 발효 예정이던 전임 바이든정부의 반도체 수출통제정책을 철회하고 보다 단순한 규정으로 대체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은 인공지능(AI) 경쟁 우위를 지키기 위해 지난 수년 동안 중국이 AI 전용칩을 확보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하지만 엔비디아 칩 등에 대한 ‘회색시장(grey market. 특정상품을 정규시장과 다른 가격에 매매하는 시장)’이 커지면서 허점이 많았다. 중국기업들은 역외 데이터센터를 임대하거나 국제중개상을 통해 칩을 사들이고 있다. 수출통제는 중국기술의 부상을 막는 데 명백히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한 바이든 수출통제정책의 문제점은 실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하다는 점. 예를 들어 미국의 소수 동맹국들은 별다른 제한이 없다. 중국과 러시아는 전면적으로 제한된다. 하지만 인도와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 등 중간에 낀 120여개국들은 미로같은 라이선싱 규정을 적용 받는다. 전세계를 범위로 반도체 활용을 추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규정을 시행할 책임부서인 미 상부무 산업안보국(BIS)엔 직원이나 장비, 자금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반도체 통제는 허점이 있게 마련”이라며 “트럼프정부는 새로운 규정을 고민하면서 현실적이 돼야 한다. 통제 타깃이 협소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대중국 통제조치 중 가장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받는 건 EUV리소그래피장비다. 오직 네덜란드 ASML만 만든다. 게다가 연간 약 50대 정도만 팔린다. 각 장비의 무게는 100톤이 넘는다. 때문에 이를 추적하기가 쉬웠다. 반면 AI칩은 전혀 다른 상황이다. 크기가 매우 작은 데다 용도가 다양하다. 수는 엄청나다. 엔비디아 홀로 올해 600만개 이상의 칩을 판매할 계획이다.
또 한가지 주목할 점은 중국에 대한 반도체 통제가 반감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정부는 지난 10년 넘게 반도체 부문에 수십억달러를 투자했다. 하지만 기술적 돌파구는 미국이 수출통제를 강화하기 시작한 이후 본격적으로 열렸다. 대표적인 사례는 화웨이다. 미국 통제정책의 핵심대상이던 화웨이는 최근 일부 지표에서 엔비디아 칩에 견줄 만한 AI칩을 개발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미국의 통제는 중국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대안을 찾아나설 명분을 제공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는 수출통제망을 넓히게 되면 혜택은 별로 없고 비용만 커진다는 점을 시사한다”며 “중간에 낀 전세계 120여개국들은 중국 공급업체들에 기울 수밖에 없다. 중국이 좋아서가 아니라 중국 칩에 접근하기가 쉽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또 “보도된 바에 따르면 트럼프정부는 AI칩을 무역협상 도구로 활용할 것을 고려중이다. 하지만 규칙에 기반해야 할 무역시스템이 그같은 조건에 매인다면, 많은 나라들은 미국 반도체기업들을 신뢰할 수 없다고 여길 것이다. 타국의 불신은 미국기업들의 시장점유율과 기술적 우위를 갉아먹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