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파기환송’ 사법부 혼란 가중
전국법관대표회의, 임시회의 조만간 소집키로
법원 안팎, 조희대 대법원장 고발·사퇴론 확산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 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상고심에서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이후 법원 안팎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사퇴 요구와 고발 움직임 등이 잇따르고 있다.
법원 내부에서 법원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의심과 사법에 대한 신뢰 훼손 문제에 대해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소집될 예정인 가운데, 정치권을 비롯한 법원노조와 시민단체는 조 대법원장에 대한 고발과 사퇴 요구 목소리를 냈다.
◆법관대표회의, 구성원 5분의 1 이상 소집 요구 = 법조계에 따르면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절차 및 이후 대법원에 대한 민주당의 사법부 독립 침해를 논의하기 위한 전국법관대표회의(의장 김예영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는 조만간 개최하기로 결정했다고 9일 밝혔다. 각급 법원 대표자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단체 대화방에서 전국법관회의 개최 요구를 위한 투표를 8일부터 9일 오전 10시까지 투표를 진행해 이 같이 결정했다.
법관대표회의 관계자는 이날 “전국법관대표회의 구성원의 5분의 1 이상이 법원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의심과 사법에 대한 신뢰 훼손 문제에 대하여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논의하고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전국법관대표회의 임시회의 소집을 요청하였다”며 “전국법관대표회의 규칙 제5조 제4항에 따라 임시회의가 소집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구체적인 일정, 장소 및 안건에 대해서는 추후 관련 절차를 거쳐 구체화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법원 안팎에 따르면, 당초 대법원의 이재명 후보에 대한 선고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진행된 데 대한 유감 표명과 재판에 있어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의지 확인, 그리고 향후 이를 지키기 위한 방안 등을 안건으로 회의 소집이 제안됐다고 한다.
하지만 전날 민주당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조희대 대법원장 등 대법관 12명을 증인으로 채택한 청문회를 강행하기로 의결하고, 조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 10명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기로 하는 등 사법부에 대한 야당의 강경 대응이 이어지면서 안건이 추가됐다고 한다.
정기회의와 함께 현안에 따라 비정기적으로 열리던 전국법관대표회의는 대법원 규칙 개정으로 2018년 4월부터 공식 기구가 됐다. 의장은 김예영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가 맡고 있다.
최근에는 지난 1월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가 발생했을 때 임시회의가 열렸다. 당시 대표회의 이후 “재판을 이유로 법원을 집단적·폭력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결코 용인될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고발·사퇴 요구 잇따라 = 판사들 내부에서 조 대법원장에 대한 유감 표명 및 사법부 독립에 대한 의견 수렴을 위한 절차와 별개로 법원 안팎에서는 조 대법원장에 대한 고발과 사퇴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변호사 175명이 참여한 ‘사법쿠데타 저지 변호사단’은 8일 오전 서울지방변호사회관 앞에서 공식 출범한 뒤 조 대법원장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하기로 했다. 사법쿠데타 저지 변호사단은 문재인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 사회조정비서관을 지낸 강문대(사법연수원 29기) 변호사가 대표를 맡고, 전 열린민주당 최고위원 황희석(31기) 변호사 등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이들은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은 사법권의 한계를 넘어선 정치개입이자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침해하는 민주주의 파괴 행위”라며, 조 대법원장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와 직무유기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변호사단은 “대법원이 신속 처리라는 명분 아래 사건을 졸속하고 부실하게 처리했다”며 “대법관들이 사건에 관해 숙고하고 심리에 참여할 기회가 실질적으로 박탈됨으로써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했다”고 비판했다.
법원공무원 노조도 대법원장 비판 행렬에 가세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는 이날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 대법원장은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위반과 사법부 신뢰 훼손의 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법원공무원 노조는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은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지 단 9일 만에 판결이 선고됐다”며 “사법부 역사상 유례없이 ‘신속’하게 진행된 전원합의체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조 대법원장은 주권자 국민이 아닌 임명권자 윤석열을 따랐다는 의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으며, 그동안 법원 구성원들의 피와 땀으로 쌓아온 사법부 신뢰의 가치를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이에 앞서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도 “이러고도 당신이 대법관인가?”, “조 대법원장은 반이재명 정치투쟁의 선봉장이 됐다. 사과하고 사퇴해야 한다” 등 조 대법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판사들의 글이 올라와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변협 전 회장 9명 “사법부 흔들기 중단” 요구 = 한편 대한변호사협회(변협) 전 회장 9명이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특별검사법 발의와 청문회 개최, 탄핵 추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냈다.
이들은 8일 공동명의 성명서를 통해 “더불어민주당은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특검법, 청문회, 탄핵 추진을 중단하고 삼권분립을 위협하는 사법부 흔들기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대법원은 선거법 사건을 법률에 따라 신속히 처리했을 뿐이므로 이를 두고 정치개입 행위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개별 사건에 대해 대법원장의 책임을 묻는다면 사법부의 독립이 위협받으며 법관들이 안심하고 법률과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하지 못하게 된다”며 “외부 권력과 여론에 법원이 휘둘리게 되면 정의는 설 수 없고, 사법부가 정치에 억압당해 법치주의는 심각하게 훼손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성명에는 제35대 박승서 회장을 비롯해 함정호(39대), 정재헌(41대), 천기흥(43대), 신영무(46대), 하창우(48대), 김현(49대), 이종엽(51대) 변호사에 이어 올해 초 물러난 52대 김영훈 회장까지 총 9명의 전직 협회장이 이름을 올렸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