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밑 달러’ 꺼내는 아르헨티나 정부
이번 주 활용 방안 발표
은닉 자산 379조원 추정
아르헨티나 정부가 이른바 ‘침대 밑 달러’의 활용 방안을 금주내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현지 일간지 페르필은 11일(현지시간) 하비에르 밀레이 행정부가 미신고 달러 자산을 양성화하지 않고도 시장에 유통할 수 있는 새로운 조치를 준비 중이라고 보도했다.
‘침대 밑 달러’는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정부의 외환 규제와 세금 조사 회피 등을 이유로 공식 금융 시스템 바깥에 은닉한 외화 자산을 의미한다. 매트리스 밑에 숨긴다는 상징적 표현이지만, 실제로는 현금뿐 아니라 은행 대여 금고, 해외 조세 회피처 내 계좌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이 같은 미신고 자산 규모는 현재 약 2712억달러(한화 약 379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수십 년간 반복된 경제 위기로 인해 국민들은 자국 통화인 페소 대신 미국 달러를 선호해왔고, 부동산 거래 등 주요 자산 거래도 달러화 기준이 일반적이다.
밀레이 정부는 지난해 9월 ‘블랑께오(blanqueo)’라고 불리는 사면조치를 통해 은닉 자산 양성화에 성공을 거둔 바 있다. 이번 조치는 사면 없이, 세무조사 우려 없이도 자산을 공식 경제에 유입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루이스 카푸토 경제장관은 이 조치가 자동차·가전제품·부동산 등 소비 분야에 ‘침대 밑 달러’가 사용되도록 유도해 내수 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페르필은 특히 이번 조치의 핵심 목적이 외환보유고 확충과 환율 안정에 있다고 강조했다.
경제 전문가들에 따르면 은닉 달러가 시장에 유입될 경우 달러 공급이 증가해 환율은 달러당 1000페소 수준까지 낮아질 수 있다. 이 경우 아르헨 정부는 하한선에 맞춰 달러를 매입해 외환보유액을 늘릴 수 있고, 환율 하락은 인플레이션 억제에도 기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배경은 외채 상환 문제다. 2026년까지 아르헨티나가 상환해야 할 외채는 250억달러(약 35조원)에 달한다. 현재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과 체결한 200억달러 규모의 차관은 내년 1월까지 외채 상환분만 충당할 수 있어, 이후 유동성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다.
페르필은 “밀레이 정부가 이번 조치에 외환정책과 부채 전략의 중심을 두고 있다”며 “침대 밑 달러를 제도권 안으로 유도해 외환위기 대응력을 높이려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방안의 세부 내용은 며칠 내 발표될 예정이며, 자산 보유자들의 반응과 실제 시장 유입 규모에 따라 아르헨티나 경제의 향방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