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DNA와 로봇의 만남, 생물다양성 새 지표를 열다
물 공기 토양 등에 남겨진 유전자로 종 확인 가능 … 인간이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 조사는 물론 시민과학 활성화도
2019년 7월 29일 내일신문이 ‘멸종위기 1급 생물, 유전자로 서식지 확인’ 기사를 단독으로 보도했을 때 ‘신기하다’ ‘흥미롭다’ 등의 반응과 함께 ‘정말 가능해?’라며 의구심을 표하는 이들이 있었다. 하천 물을 채수한 뒤 그 안에 있는 유전자를 분석해 하천 상류에 어떤 종이 살고 있는지 파악한다는 게 낯설게 느껴졌던 시절이다.
하지만 우리가 체감하지 못할 뿐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환경 변화를 파악하기 위한 과학 기술의 진보는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환경DNA(eDNA)다.
환경DNA는 토양이나 물 공기 등에서 얻은 ‘생물학적 지문’이다. △세포 내 DNA △탈피한 피부 △털 △배설물 △사체 등 세포 내외 DNA에서 유래한 복잡한 혼합물이다. 최근에는 생물다양성 모니터링을 위해 전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환경DNA 메타바코딩 조사는 생물체의 명백한 징후 없이도 단일 샘플에서 여러 종들을 동시에 감지할 수 있는 방법이다. 또한 DNA 흔적을 수집하는 자동화된 기계적 방법은 넓은 공간 규모에서 생물다양성 조사를 용이하게 한다는 점에서 활용 폭이 넓어지는 추세다.
아주 간단히 설명하면 제품 바코드처럼 세포 각각에는 유전자가 있다. 생물체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거나 이미 그 장소를 떠났더라도 자신도 모르게 DNA를 남긴다. 이 흔적을 물이나 토양 등에서 채취해 대량 염기서열 분석(시퀀싱)을 통해 어떤 종들의 DNA가 있는지 확인한다. 이후 종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해 해당 종을 식별하는 식이다.
이후승 한국환경연구원 연구위원은 4월 30일 서울역 인근에서 열린 ‘한국환경유전자학회 2025년 춘계 심포지엄’에서 “환경DNA를 활용한 분석은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공기 중의 환경DNA를 분석해 반달가슴곰을 연구하는 등 여러 사례들이 축적되고 있으며 그 정확도도 빠른 속도로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9일 박찬호 전남대학교 수산과학연구소 연구교수는 “생태학 유전학 정보과학 사회과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가 연계하는 환경DNA 관련 융합 연구 프로젝트 지원이 시급한 상황”이라며 “기술 혁신 가속화로 환경 보전은 물론 감염병 대책, 수산 자원 관리 등 다양한 사회 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로봇공학 생물학 등 다양한 영역의 융합 = 실제로 이미 국제사회에서는 로봇공학 환경과학 생물학 등 다양한 영역의 융합을 통해 첨단 기술이 환경 보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활발히 모색 중이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Science Robotics)’의 논문 ‘생물다양성 모니터링을 위해 드론을 활용한 나뭇가지에서의 환경DNA 수집(Drone-assisted collection of environmental DNA from tree branches for biodiversity monitoring)’에서는 환경DNA를 수집해 생물다양성을 모니터링하는 드론 기술이 소개됐다.
이 연구팀이 개발한 ‘e드론(eDrone)’은 숲 캐노피(수관층)와 같이 접근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효과적으로 생물다양성 자료들을 수집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깊다. e드론은 힘 감지 케이지와 촉각 기반 제어 전략을 결합해 다양한 강성(어떤 물체가 외부로부터 압력을 받아도 모양이나 부피가 변하지 않는 성질)의 나뭇가지와 안정적으로 접촉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구조적 특성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도 다양한 범위의 강성을 가진 나뭇가지에 자율적으로 착륙할 수 있어 기존 한계를 극복했다. 이렇게 되면 드론을 통한 환경DNA 수집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
이 논문에 따르면, 현장 실험에서 7개 다른 나무종에서 수집한 샘플들을 분석한 결과 곤충 포유류 조류 양서류 등 21개의 동물 분류군이 확인됐다. 논문에서는 “생물권 보호와 복원을 위해서는 생물다양성 상태에 대한 정확한 자료들이 필수”라며 “이 기술은 기존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서식지의 생물다양성을 대규모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기술이 앞으로 더 발전하면 다양한 환경에서 생물다양성 조사를 자동화하고 인간 활동과 기후 변화가 생물권에 미치는 영향을 더 잘 이해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며 “특히 다수의 드론을 활용한 다중 에이전트 시스템(여러 드론이 서로 통신하며 협업하는 시스템)이 구현된다면 더 넓은 지역을 동시에 조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데이터 공유 규칙 등 가이드라인 필요” = 생물다양성에 대한 정의는 국가 등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공통된 점은 ‘변화(variation)’를 측정하는 것이다. 해당 생태계에 속한 생물들의 분포와 이동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변화 추이를 관찰하는 게 중요하다. 자연에서 중요한 건 균형의 유지, 즉 ‘지속성’이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를 얼마나 잘 파악하는지가 관건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에 분절적 혹은 산발적으로 축적된 자료들의 통합적인 관리가 필수다. 물론 A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에 따른 자료들을 새롭게 확보하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기존에 각기 다른 목적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축적된 자료들을 활용해 새롭게 도래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도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
이 연구위원은 “자료 양에 따른 생태적 영향의 분석 효과는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평가를 위한 활용 자료의 다양화 노력이 필요하다”며 “국제사회는 생물다양성 평가체계 다변화를 추진 중이지만 국가-분류군 별 데이터의 고른 분포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 연구교수는 “데이터 형식 표준화와 메타데이터 충실화, 프라이버시 보호 등을 고려한 데이터 공유 규칙 및 가이드라인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며 “유전 정보로서의 환경DNA 자료의 적절한 관리 및 이용 보호에 관한 법 제도 및 가이드라인 정비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생물다양성 모니터링의 새 패러다임 = 생물다양성 변화를 파악할 때 환경DNA 활용하는 방안은 시민과학 저변 확대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전문 연구자들만으로 광범위한 환경 자료들을 수집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시민과학자들과 협업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문제는 시민과학자들을 단기간에 일정 수준으로 교육하기에는 여러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만약 표준화된 환경DNA 샘플링 도구 등을 개발해 보급한다면 더 많은 시민들이 생물다양성 모니터링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박 연구교수는 “실제로 이미 국제사회에서는 환경 DNA와 시민 과학을 결합한 다양한 글로벌 프로젝트들이 생물다양성 모니터링에 혁신을 가져오고 있다”며 “이러한 접근법은 전문 연구자만으로는 불가능한 대규모 데이터 수집을 가능하게 하면서 동시에 대중의 환경 인식과 참여를 높이는 이중 효과를 창출한다”고 소개했다.
국제학술지 ‘환경 과학과 생태기술(Environmental Science and Ecotechnology)’의 논문 ‘시민 과학과 eDNA의 결합: 도시 습지 생물다양성 연구의 새로운 도약(Citizen science meets eDNA: A new boom in research exploring urban wetland biodiversity)’에 따르면, 중국 난징의 도시 습지 생물 다양성 모니터링 프로젝트에서는 학생들이 환경DNA 채집 키트를 사용해 도시 습지에서 샘플을 채취했다. 학생들 중 일부는 실험실 작업에도 참여했다. 이 프로젝트는 도시 습지에서 900개 이상의 분류군을 식별했으며 전통적인 조사에서는 간과되기 쉬운 다수의 미생물을 포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작업에서 확인된 박테리아 조류 동물플랑크톤 연체동물 등 90% 이상은 맨눈으로는 거의 볼 수 없는 생물들이었다. 이는 미생물 보전 필요성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높이는 효과가 있었다.
중국 외에도 다양한 국가에서 시민과학과 환경DNA를 접목한 다양한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다. 2019년 미국에서는 과학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은 함께 21개 연못에서 환경DNA 샘플을 수집해 정량적 중합효소 연쇄반응(PCR)으로 양서류 병원체를 탐지했다.
덴마크에서는 2020년 일명 ‘개미 사냥’ 시민 과학 프로젝트를 시작해 덴마크에서 최초로 외래 개미 종의 존재를 확인했다.
국내 상황에 맞는 환경DNA 시민과학 프로젝트 활성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국내에서도 △멸종위기종 모니터링 △외래종 유입 감시 △도시 생태계 건강성 평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다. 특히 학교 교육과 연계해 청소년들의 과학적 소양과 환경 의식을 동시에 높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늘어난다면 장기적으로 과학 정책 결정 과정에 시민 참여를 확대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