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스 로고프 “달러 패권, 닉슨 쇼크 이후 최대 위기”
“향후 5~7년내 달러 지배력 구조적 전환 일어날 것”
금리 상승·인플레이션 재확산에 '금융 억압' 예상
변동성 확대로 어디에서건 금융위기 가능성 제기
세계 기축통화로 군림해온 미국 달러가 1971년 닉슨 대통령이 달러의 금태환 제도를 일방적으로 폐지한 일명 ‘닉슨 쇼크’ 이래 가장 큰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이자 전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케네스 로고프는 최근 신간 ‘우리의 달러, 당신들의 문제’(Our Dollar, Your Problem)와 잇단 언론 인터뷰를 통해 “달러의 지배력은 이미 2015년을 정점으로 약화되기 시작했으며, 향후 5~7년 내에 본격적인 구조적 전환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로고프 교수는 미국의 재정적자 누적과 정치 불안, 무역 정책의 불확실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달러의 국제적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한 대규모 관세 부과와 연이은 달러 약세는 그 전환점을 앞당길 수 있는 “가속 촉매제(accelerant)”로 작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로고프는 달러가 단지 외환시장에서의 강세 통화 그 이상이라며,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지배하는 통화이자 제재, 정보 감시, 위기 대응 능력 등에서 미국의 국제적 영향력을 뒷받침하는 핵심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특권적 지위는 더 이상 보장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달러가 누려온 이른바 ‘과도한 특권(exorbitant privilege)’의 근거로 저금리 조달, 위기 시 적극적 재정 지출 가능성, 제재를 통한 외교 수단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러한 지위는 세계 각국의 달러 회피 움직임과 함께 서서히 약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2015년 이후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국을 중심으로 외환 보유의 다변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유럽중앙은행은 유로화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 통화 시스템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로고프는 “달러는 여전히 최상위 통화로 남겠지만, 유로와 위안화, 암호화폐 등이 시장 점유율을 나눠 갖는 ‘다극 체제(multipolar system)’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로고프는 유로화, 위안화, 암호화폐를 다룬 세 파트(Part)에서 달러의 대체 통화로써 각각의 장단점을 소개하고 향후 전망을 제시했다.
그는 기축통화 챕터(217~218페이지)에서 지난 2022년 미국이 러시아 중앙은행의 달러 자산 약 3000억달러를 동결한 조치가 중국에 강한 충격을 주었다고 언급하며, “중국은 이미 자국 금융시스템을 달러로부터 단절시키기 위한 준비에 나섰고, 이는 향후 지역 금융 질서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내 요인도 간과할 수 없다. 로고프는 “지속적인 재정적자와 금리 상승, 연방준비제도의 독립성 훼손 가능성 등이 미국 내부에서 달러 지위를 약화시키는 핵심 리스크”라고 설명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을 압박하고, 불확실한 무역 정책을 펼치며, 미국 고등 교육과 이민 정책을 위축시키고 있다”며 “이 모든 것이 미국의 혁신 능력과 경제 역동성에 손상을 주고, 달러의 신뢰를 약화시킨다”고 경고했다.
로고프는 또 달러가 강세를 유지하면서 미국 제조업과 수출기업이 피해를 입는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그는 “기축통화 지위가 달러 강세로 이어지고 미국 수출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은 일면 타당하지만, 달러를 기축통화로 유지하면서도 무역흑자와 재정흑자를 함께 누릴 수 있다”며 19세기 영국과 1960~70년대 미국 사례를 제시했다. 그는 “당시 미국은 세계 각국에 투자를 확대함으로써 달러 수요를 자국 해외투자를 통해 충족시킬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달러 외에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는 시각에 대해서도 로고프는 회의적이다. 그는 “중국은 이미 남미와 아프리카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고, 유럽은 미국의 일방적인 제재 정책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서 독일의 재무장과 역내 협력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며 “트럼프가 오히려 유럽의 정치적 통합과 유로화 국제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향후 전망에 대해 로고프는 “단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의 재확산 가능성이 크다"며 "그후 미국이 금리를 강제적으로 낮추는 ‘금융 억압(financial repression) 정책’을 도입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262페이지) 그는 “이미 유럽과 일본에서는 보험사와 연기금을 통해 정부 부채를 강제로 흡수하는 방식이 실행되고 있으며, 미국도 비슷한 길을 걸을 수 있다”고 밝혔다.
금융 억압은 일종의 긴축 재정 정책으로, 자금이 수익성 있는 민간 부문으로 흘러가는 것을 차단한다.
금융시장에 대해서도 로고프는 비관적이다. 그는 무역전쟁과 인플레에 따라 미국 달러 자산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고 장기 국채 금리가 오르게 될 것이며, 이는 ●금융시장 전반의 하락과 산업 부진 ●변동성 확대 ●지정학적 불안정을 동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연방준비제도의 독립성까지 위협받는다면 달러는 더이상 미국만의 문제가 아닌 모두의 문제가 될거라고 예견했다.(291페이지) 그는 4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환경에서는 어느 시점, 어느 지역에서든 금융 사건이나 위기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