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전쟁서 U턴한 트럼프 “시진핑과 통화할 것”
“시장개방이 최대 성과” 자평
“이번 주말 시진핑 주석과 통화할 수도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지난 한 달간 치열한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던 미중 관세전쟁이 일단 숨 고르기에 들어갔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미국과 중국은 이날 90일간 상호 관세를 대폭 낮추는 이른바 ‘관세 휴전’에 전격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의 무역관계를 완전히 리셋했다”며 “가장 큰 성과는 중국이 시장을 완전히 개방하기로 한 것”이라고 자평했다. 그는 “중국은 수많은 비관세 장벽을 없애기로 동의했다. 이를 문서화할 것이며, 나는 그들이 이를 이행할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이번 합의에 따라 미국은 중국산 제품에 부과했던 최대 145%의 관세를 30%로 인하하고, 중국도 미국산 제품에 부과한 125%의 보복관세를 10%로 낮추기로 했다. 단,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 원료에 부과된 20% 관세는 예외로 유지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펜타닐 공급을 중단하기로 합의했으며, 이는 그들에게 수십억 달러 규모의 관세 감면이라는 인센티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전략 핵심 산업에 대한 고율 관세는 여전히 유효하다. 자동차, 철강, 알루미늄, 의약품 등 품목은 이번 합의에 포함되지 않았고, 별도로 협상이 진행될 예정이다. 백악관 측은 “이번 조치는 제한적 휴전이며, 향후 추가 논의를 통해 주요 산업군의 구조적 조정이 병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양국은 이번 관세 유예를 제네바에서 진행된 고위급 협상을 통해 도출했다. 미국에서는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중국에서는 허리펑 국무원 부총리가 협상에 참여했다. 90일간의 유예 기간 동안 후속 협상은 미국과 중국, 제3국을 순환하며 진행된다. 공급망 복원, 무역 불균형 해소, 제조업 유치 등 구조적 의제가 본격 논의될 예정이다.
이번 합의의 실질적 효과를 두고는 회의적 시각도 적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대폭 관세 인하에도 미국의 실효 관세율은 여전히 39%에 이르며, 이는 트럼프 2기 출범 전보다 세 배 가까이 높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합의 내용 중 중국의 구체적 양보는 명시되지 않았다”며 “무역 갈등의 근본 해법은 여전히 미정”이라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를 ‘정치적 휴전’이자 ‘경제적 회피’라고 분석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협상에 매우 기뻐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최근 미국 경제가 보이고 있는 조짐은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고율 관세 여파로 미국의 1분기 GDP는 전기 대비 0.3% 역성장했다. 월마트, 타깃, 홈디포 등 유통 대기업은 “수입품 부족으로 매대가 비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백악관에 전달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145%는 너무 높았다”고 직접 시인한 것도 눈길을 끈다. 자국 소비자와 유통업계의 불만, 물가 상승, 공급망 붕괴 가능성 등이 백악관을 압박하면서, 결국 고관세 전략을 일정 부분 철회하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애플 CEO 팀 쿡과의 통화 사실도 공개했다. “팀 쿡은 500억달러를 들여 미국에 많은 공장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며 제조업의 미국 회귀를 관세 정책의 성과로 연결 지으려는 메시지를 던졌다. 하지만 이 역시 시장 개방이라는 실제적 성과보다 상징에 기댄 정치적 수사라는 비판이 따른다.
중국은 이번 합의를 ‘전략적 성과’로 포장하며 체제 내 결속을 강화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다. 중국중앙TV(CCTV)가 운영하는 소셜미디어 계정 위위안탄톈은 “중국이 승리했다”는 메시지를 부각했고, 상무부도 “미국은 잘못된 처사를 바로잡아야 하며, 중국은 다자주의의 수호자”라고 주장했다.
다만 시진핑 주석이 기대한 국제적 연대는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유럽을 비롯한 주요국은 미국의 관세정책에 불만을 표하면서도 중국과의 연대에는 미온적이다. 시 주석이 구상하는 반미 국제전선, 나아가 다극질서 재편 전략에 현실적 제약이 있음을 시사한다.
결국 향후 관세전쟁의 방향은 미중 정상 간 직접 대화로 수렴될 가능성이 크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휴전은 트럼프-시진핑 담판을 위한 포석”이라며 “궁극적 해법은 정치적 결단에 달려 있다”고 전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