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경기부진 신호…국책연구기관까지 ‘경기둔화’ 경고

2025-05-13 13:00:03 게재

내수 부진에 수출여건까지 악화 … 올해 GDP 대비 국채 비율 54.5% 전망

한국 잠재성장률 2%대 처음 붕괴 … 정치 불확실성에 ‘트럼프 리스크’까지

한국경제의 장기침체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 비율이 54.5%에 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렇게 되면 나라빚 비율이 처음으로 비기축통화국 평균을 상회한다. 그나마 한국경제의 기초체력을 지켜주던 재정건전성에도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내년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분석했다. 저성장 고착화 경고다. 특히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마저 우리 경제가 침체에 접어들고 있다고 경고했다.

경제 여건도 좋지 않다. 국내정치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12.3 내란사태는 국민의 참여로 정상화의 길을 걷고 있지만, 조기대선 영향으로 정치권은 ‘포퓰리즘적 공약 선전’에 여념이 없다. 나라 밖에서는 트럼프의 관세 전쟁 도발로 세계경제가 안갯속이다.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엔 치명타다.

수출입 화물이 쌓여 있는 신선대부두 관세 등 통상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수출하는 기업들의 불확실성과 함께 금융 부담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부산항 신선대부두에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는 모습. 연합뉴스 강선배 기자

◆‘경기둔화’ 경고 나왔다 = 13일 KDI에 따르면 ‘경제동향 5월호’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대외 여건이 급격히 악화하면서 경기 둔화를 시사하는 지표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KDI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기 진단에서 ‘하방 위험’ 또는 ‘하방 압력 확대’ 등과 같은 표현을 써왔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경기 둔화’란 단어를 꺼내들었다. 장기간 이어진 경기 하방 리스크가 현실화하면서 실제로 경기 침체 초입에 접어들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경기 둔화를 시사하는 대표적인 지표는 산업생산 둔화다. 특히 건설업 부진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KDI는 진단했다. 3월 전산업생산은 전년 동기 대비 1.3% 증가하며 전월(1.2%)에 이어 부진한 흐름을 이어갔다. 특히 건설업 생산이 14.7% 급감하며 올 들어 3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KDI 관계자는 “반도체·전자부품 등 광공업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건설업을 중심으로 생산 증가세가 낮은 수준에 머물고 통상 여건도 악화되면서 경기 둔화를 시사하는 지표가 크게 점증했다”고 평가했다.

내수 부진도 이어지고 있다. 서비스 소비는 숙박·음식점업(-3.7%) 등을 중심으로 부진한 흐름이 이어졌다. 4월 소비자심리지수는 93.8로 전월보다 소폭 상승했지만 기준치(100)를 하회했다.

수출 여건이 나빠지고 있는 점도 경기 둔화 가능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구조적 경기둔화 경고음 = 더 큰 문제는 경기 둔화 흐름이 장기화할 것이란 점이다. 국회 예산정책처(1.9%), KDI(1.5%) 등 국내 기관에 이어 외국 기관까지 한국의 잠재성장률 전망을 1%대로 낮춰 잡고 있다. OECD가 최근 업데이트한 경제전망에 따르면 한국의 내년 잠재성장률은 1.98%로 올해(2.02%)보다 0.04%포인트(p) 낮아졌다. 통계 집계가 시작된 1986년 이후 잠재성장률 2%대가 무너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가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최대한 활용해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을 말한다. 불과 8년 전인 2017년까지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3%를 웃돌았다. 그만큼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한국의 잠재성장률 하락세는 OECD 국가들 중에서도 두드러진다는 평가다. 2017~2026년 10년간 한국의 잠재성장률 낙폭(1.02%p)은 잠재성장률이 공개된 37개국 중 7번째로 하락 폭이 크다. 우리보다 낙폭이 큰 국가들은 튀르키예를 제외하면 체코·에스토니아 등 경제 규모가 한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국가들이다. 세계 1위 경제 대국 미국의 잠재성장률은 2.2~2.4% 수준이다.

KDI 관계자는 “통상 여건 악화에 따른 글로벌 경기 둔화로 향후 수출을 중심으로 경기 하방 압력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며 “세계경제 하방 압력이 작용되는 가운데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성도 확대되며 대내외 경제심리가 위축되고 있다”고 밝혔다.

◆재정건전성도 빨간불 = 그나마 한국경제를 버텨주던 재정건전성에도 경고등이 켜진지 오래다.

IMF는 올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 비율이 54.5%에 달해 사상 처음으로 비기축통화국 평균을 상회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IMF는 한국의 부채 비율이 앞으로도 지속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IMF가 발간한 ’재정점검 보고서‘(Fiscal Monitor) 4월호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 비율을 54.5%로 전망됐다. IMF가 선진국으로 분류한 비기축통화국 11개국의 평균(54.3%)을 처음으로 넘어서는 수치다.

비기축통화국은 IMF가 선진국으로 지정한 37개국 중 달러화·유로화·엔화 등 8대 준비통화를 보유하지 않은 국가를 말한다. 이들 국가는 통화신뢰도 및 채권 수요 측면에서 기축통화국에 비해 불리한 위치에 있어 재정 건전성 유지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일반정부 부채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채무 외에도 공공기관의 비영리 부문 부채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정부 부채다. IMF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회원국 간 부채 비교 시 이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한국의 일반정부 부채는 2016년까지만 해도 GDP의 39.1%로 선진국 중 매우 양호했다. 하지만 2020년 이후 코로나19 대응, 경기부양, 복지지출 확대로 빠르게 증가했다. 게다가 IMF는 한국의 일반정부 부채 비율이 2030년에는 59.2%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향후 5년간 4.7%포인트(p) 상승하는 것이다. 같은 기간 체코(6.1%p)에 이어 비기축통화국 중 두 번째로 높은 증가폭이다. 같은 해 비기축통화국 평균치(53.9%)와 비교하면 한국은 5.3%p 높은 수준이다.

한국의 부채 비율은 미국(128.2%), 일본(231.7%), 영국(106.1%) 등 주요 7개국(G7)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하지만 이들 국가는 달러화·엔화·파운드 등 국제 기축통화를 보유한 국가로 자금 조달 여건 측면에서 비교하기 어렵다.

이번 보고서에서 IMF는 한국의 부채 비율 전망치를 종전 54.3%에서 54.5%로 상향 조정했다. 경기 둔화 와 재정 지출 증가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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