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 앞두고 미 제약 수입 ‘폭증’
3월에만 530억달러
전년 대비 5배 급증
미국 무역적자 키워
미국 제약·의료업계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의약품 관세 부과 가능성에 대비해 재고 확보를 서두르면서, 3월 관련 제품 수입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은 3월 한 달간 제약 및 의료산업에서 사용되는 제품을 총 530억달러어치 수입했다. 이는 2002년 이후 미 연방 통계 기록상 가장 높은 수치다.
특히 의약품 관련 수입은 전년 동월 대비 약 160% 급증했으며, 전월과 비교해도 거의 두 배 늘었다. 완제품과 원료 확보를 위한 수입이 급증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광범위한 관세 정책이 실제 기업 활동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를 보여주는 첫 단서가 된다고 1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제약 산업에 직접적인 관세를 부과하진 않았지만, 미국 정부는 지난달부터 관련 분야에 대한 국가안보에 미칠 영향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이와 관련, 미국과 영국 정부는 지난주 약품 및 원료에 대한 ‘상당히 호의적인(significantly preferential)’ 관세 체제를 신속히 협상하겠다고 밝혔다. 이 협상은 미국의 제약산업 조사 결과와, 공급망 투명성과 안전성에 대한 미국의 요구 기준을 충족하는지 여부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미국내 관련 업계가 이같은 움직임을 관세 부과의 전조로 받아들이며 대응에 나선 것이다.
3월 미국의 의약품 수입 중 아일랜드가 280억달러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전년 동월(5억5000만달러)과 비교하면 약 5배 가까이 증가한 규모다. 아일랜드에는 낮은 법인세율을 기반으로 다수의 미국 제약사들이 생산시설을 두고 있다.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제약·바이오 공장만 50곳에 이른다. 2024년 기준 아일랜드는 미국 제약 수입의 28.1%를 차지하는 최대 수입국이다.
제약 수입 사재기 바람 속에 3월 미국의 무역적자는 1405억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특히 아일랜드발 의약품 수입이 적자 폭을 키운 결정적 요인으로 지목됐다.
JP모건체이스의 애비엘 라인하트 연구원은 브랜드 제약사들이 확보한 재고로 관세 충격을 완화하고, 동시에 미국 내 생산을 늘릴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트럼프 1기 행정부의 법인세 인하로 유럽 생산 유인은 줄었지만, 과거 투자의 영향으로 유럽 수입 비중은 여전히 높다고 덧붙였다.
미국 제약사들은 최근 잇따라 자국 내 생산 확대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일라이 릴리는 2월 270억달러 규모의 투자 계획을 내놨으며, 존슨앤드존슨도 3월 550억달러 이상을 투입해 4개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머크의 최고경영자 롭 데이비스는 “항암제 키트루다는 현재 미국 내 재고만으로도 2025년 말까지 충분히 공급 가능하다”고 밝혔다. 존슨앤드존슨의 CEO 역시 관세가 약품 부족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럽 제약사들도 미국 내 관세 리스크에 대응해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와 영국 상장사 GSK도 유럽 생산제품의 일부를 미국으로 이전 생산하는 추가 투자를 계획 중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재고 확대가 단기 처방에 불과하며, 재고가 바닥나면 약가 인상이나 보험료 부담이 현실화되면서 정책적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