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용 현수막·벽보 훼손 잇달아
정치 양극화에 대선때마다 증가세 … 2년 이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 벌금형
#1.부산 서부경찰서는 대통령 선거 현수막을 훼손한 혐의로 50대 남성 A씨를 불구속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A씨는 선거운동 첫날인 지난 12일 부산 서구 한 노상에 설치된 선거 현수막을 잡아 뜯는 방법으로 훼손한 혐의를 받는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폐쇄회로(CC)TV 추적과 탐문수사를 거쳐 A씨를 검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2.강원 삼척경찰서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60대 B씨를 붙잡아 조사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B씨는 13일 오후 2시 10분쯤 삼척시 원당동의 한 도로에 정차돼 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유세차량의 타이어를 훼손한 혐의를 받는다. 체포 당시 그는 만취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CCTV 확인 등 추가조사를 통해 B씨 혐의가 입증되는 대로 재물손괴 혐의를 더해 입건할 방침이다.
제21대 대통령 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가운데 전국 곳곳에서 선거용 현수막·벽보 훼손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정치 양극화 심화로 대선 때마다 훼손 사건이 증가세를 보이고 있어 6월 조기대선도 예외는 아닐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4일 경찰청에 따르면 2022년 실시된 제20대 대선 당시 현수막·벽보 훼손한 혐의로 850명이 검찰로 송치됐다. 문제는 대선에서 현수막·벽보 훼손 사건이 증가세를 보인다는 점이다. 지난 20대 대선의 경우 19대 대선(645명)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18대 대선에서는 검거 인원이 180명(경찰청·대검찰청)에 그쳤다.
공직선거법상 정당한 사유 없이 선거 벽보와 현수막 등 홍보물을 훼손하거나 철거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특히 정치적 의도가 없고, 선거 결과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 단순 파손이나 낙서까지도 처벌받을 수 있다.
◆정치적 의도 없는 단순 훼손도 예외 없어 = 실제로 지난해 8월 인천지법에서는 선거사무소 건물 외벽에 걸린 총선 후보자의 현수막을 여러 차례 찢고, 포스터 형태의 홍보물을 손으로 뜯은 혐의로 기소된 60대 C씨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C씨는 “건물 1층 출입문에 붙어있는 선거 포스터로 인해 내부가 보이지 않아 답답하고 짜증 나서 현수막을 훼손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하지만 법원은 “공직선거와 관련한 선전물을 훼손하는 행위는 선거의 알 권리와 공정성을 해치는 범행”이라며 벌금 80만원을 선고했다.
2022년 2월 제20대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 경기 남양주시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50대 D씨는 대선 후보의 현수막을 떼어낸 혐의로 벌금 80만원을 선고받았다. D씨는 현수막이 가게 간판을 가려 매출이 준다고 판단해 이를 떼어냈다.
재판부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거나 선거운동을 방해할 목적은 없던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유권자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공정한 선거운동, 선거 관리 효율성을 저해해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촉법소년(10세 이상 14세 미만)이라 하더라도 혐의가 인정되면 가정법원 소년부에 송치된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서울 서초구 아파트 단지에서 아이스크림 나무 막대로 선거 벽보를 훼손한 중학생 E(당시 13세)군도 소년부에 송치된 바 있다. E군은 경찰 조사에서 “친구 두 명과 함께 걸어가다 자랑삼아 벽보를 훼손했다”고 진술했다. 다만 경찰은 재범의 우려가 적다고 판단해 법원에 ‘불처분 의견’을 냈다.
전문가들은 정치 양극화 심화로 이번 대선에서도 선거 벽보·현수막과 유세차량을 훼손하는 사건이 많아 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미 이재명 후보와 관련한 훼손 사건이 전국 곳곳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경찰과 선거관리위원회 등에 따르면 13일 오전 5시 40분쯤 충북 증평군 증평읍 송산리 한 도로변에 게시돼 있던 이재명 후보 현수막이 훼손됐다는 112신고가 접수됐다. 신고받은 현수막은 이 후보 얼굴 부분이 날카로운 도구로 찢긴 상태였다. 이에 경찰은 주변에 설치된 CCTV 영상을 확인하는 등 용의자 추적에 나섰다.
12일 오후에는 강원 동해시 북평동 이원사거리 주변에 게시돼 있던 이 후보 현수막이 훼손됐다. 강원도선거관리위원회는 동해경찰서에 해당 현수막을 훼손한 신원미상자에 대한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선거법 위반 혐의 162명 수사 중 = 경찰은 지난달 9일부터 경찰청을 포함한 전국 278개 관서에 ‘선거사범 수사상황실’을 설치해 24시간 운영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12일 기준 선거 사건으로 162명을 수사 중이다.
이호영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지난달 8일 상황실 개소식에서 “공명선거를 뒷받침하기 위해 각종 선거범죄에 신속하고 엄정하게 대응하는 한편 엄격한 중립의 자세로 철저히 관리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경찰청은 지난 2022년 3월 9일 치러진 20대 대선과 관련한 선거사범 2614명(1792건)을 수사하고, 그중 732명(구속 8명)을 같은해 9월 검찰에 송치했다. 선거범죄의 공소시효는 선거일로부터 6개월로, 20대 대선 관련 사건은 2022년 9월 9일자로 공소시효가 완료됐다.
범죄 유형별로 살펴보면 허위사실유포(954명·36.5%), 선거 현수막·벽보 훼손(850명·32.5%)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해 전체 69%에 달했다. 이어 선거폭력(110명·4.2%), 금품수수(68명·2.6%) 등이 뒤를 이었다.
선거 관련 중점 수사대상으로 분류되는 ‘5대 선거범죄’ 혐의를 받은 경우는 1157명(44.3%)이었다. 5대 선거범죄는 금품수수, 허위사실유포, 공무원선거관여, 불법단체동원, 선거폭력이다.
당시 경찰은 선관위 고발·수사 의뢰(238건·13.3%), 고소·고발(696건·38.8%), 첩보(154건·8.6%), 신고·진정(704건·39.3%) 등을 단서로 수사에 착수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