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체코 원전 계약, 장기 지연 우려
현지언론 “보조금 조사 오래 걸릴 것” … EU의 지역경제 블럭화 추진 분석도
한국과 체코의 두코바니 원자력발전소 수주 최종계약이 장기간 지연될 수 있다는 전망이 현지에서 나왔다.
또 한-체코 원전 최종계약 유보는 유럽연합(EU) 차원에서 지역경제 블럭화를 위한 조직적인 대응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폴리티코 유럽판은 14일(현지시간) ‘외국 보조금 규제(FSR), 유럽에서 뜨거운 감자’ 제하의 기사에서 “FSR의 조사단계는 기한이 없고 매우 오래 걸릴 수 있다는 점만 확실하다”고 보도했다. 이어 “예를 들어 풍력 터빈과 관련된 조사도 1년 넘게 진행 중이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다”며 “결국 체코정부는 자국의 에너지 계획과 EU의 규제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진단했다.
FSR 조사기간이 길어지면 본협상은 더 큰 장벽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10월 체코 총선이 예정돼 있어 선거 결과에 따라 판세가 바뀔수 있기 때문이다.
또 폴리티코는 “EU의 산업담당 집행위원인 스테판 세주르네가 FSR 조사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며 “특히 EU집행위원회의 정보 요청에 국가기관이 응답하지 않을 경우에 대한 접근 방식의 사례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EU 집행위는 체코정부가 두코바니 원전의 원자로 2기 건설 계약을 한국업체(한국수력원자력)에 발주한 결정에 대해 지난해 10월부터 조사를 진행 중이다. 이는 프랑스 에너지기업 EDF(프랑스 전력공사)가 한수원이 자국에서 부당한 보조금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제기한 문제에서 비롯됐다.
EU 집행위는 이 과정에서 2월 12일 체코 공공 발주처에 공식 정보요청을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체코 측은 5월 7일 최종계약을 체결하겠다고 발표했다.
체코 당국은 이번 입찰과정이 경쟁규정에 부합한다며 두 차례 문제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체코 지방법원은 최종계약 하루 전인 6일 EDF가 제기한 소송을 근거로 계약서명 중단명령을 내렸다.
아울러 유럽 대부분이 긴 연휴를 즐기던 2일 세주르네 위원은 체코 통상장관에게 (최종계약을 중단하라는)‘즉각적인 조치’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EU집행위원이 예비 조사단계에서 회원국에 직접 서한을 보내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이에 대해 폴리티코는 “이번 사건은 공공조달과 관련된 외국 보조금 사안으로, 전통적인 반독점 사건과는 다른 맥락”이라며 “세주르네 측은 체코 공공 발주처가 2월 정보요청에 전혀 응답하지 않았다는 점이 이번 개입의 핵심 이유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EU집행위 위원실이 폴리티코측에 보낸 문서에도 “공식 요청에 아무 응답이 없었던 만큼 더욱 중대한 사안으로 보았다”고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폴리티코는 세주르네가 체코정부에 보낸 서한도 입수해 공개했다.
세주르네는 서한에서 “현재 글로벌 지정학적 상황을 고려할 때 EU와 회원국들은 에너지공급의 안전을 보장하고, 체코를 포함한 단일시장 전반의 에너지안보를 유지할 공동의 중대한 책무를 지니고 있다”며 “이는 EU의 경제 안정성과 사회복지뿐만 아니라, 지정학적 안정성 유지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이어 “내부시장을 왜곡하는 사안에 대해 FSR에 따라 EU 집행위원회가 부여받은 책무를 상기시키고자 한다”면서 “이 규정의 서문에 따르면 유럽 및 외국기업들이 능력과 경쟁력을 바탕으로 경쟁할 수 있는 강력하고 개방적이며 경쟁적인 단일시장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서한대로라면 일부에서 제기되는 프랑스 출신 관계자(세주르네)가 자국 기업 EDF의 실리를 챙기기 위한 조치가 아니라 EU차원에서 지역경제 블럭화를 강화하기 위한 조직적인 대응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출범이후 △상호관세 부과 △공급망 재편 △대미국 투자유치 확대 등 모든 정책을 미국 중심으로 추진함에 따라 EU 등 세계 각국은 지역경제 블럭화 등 대응책 마련해 부심하는 실정이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