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기업, 유럽서 400억유로 규모 채권 발행
시장 불확실성 커지자
자금조달 다각화 나서
차입비용 절감도 이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 불확실성 속에서 미국 기업들이 유럽 채권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4일(현지시간) 비교적 낮은 금리와 자금 조달원 다각화를 노린 미국 기업들의 ‘리버스양키본드(Reverse Yankee Bond)’ 발행이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 중이라고 보도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에 따르면, 올해 들어 5월 9일까지 미국 비금융기업들이 유로화 표시 채권 발행을 통해 조달한 금액은 400억유로(62조5000억원)에 달한다. 이후에도 수십억 유로 규모의 신규 발행이 계획돼 있다. 작년 같은 기간(5월 말 기준) 미국 기업들의 유로화 채권 발행액 300억유로를 훌쩍 넘어섰다.
미국 기업들은 유럽에서 대규모 발행도 여럿 성공했다. 1일 구글 모회사 알파벳은 67억5000만유로, 7일 제약회사 화이자는 33억유로 규모의 채권을 각각 발행했다. 2월 11일 통신업체 티모바일US는 27억5000만유로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다. 현재 추세가 이어질 경우, 올해 미국 기업의 유로화 채권 발행 규모는 2019년의 역대 최대치였던 880억유로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초래한 시장 변동성과 경기 침체 우려 속에서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자금을 조달하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JP모건의 유럽·중동·아프리카·아시아태평양 채권 신디케이트 부서장 마크 루엘은 “올해는 시장이 상대적으로 변동성이 컸던 만큼, 주요 발행 기업들이 자금조달을 앞당기려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기업들이 유로화를 조달해 유럽 현지에서 사용하는 경우 환율 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최근 유로/달러 환율이 크게 요동친 만큼, 기업들은 이에 대비한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 자금을 조달하면 환율 변동에 대한 자연 헤지 효과가 있어 리버스양키본드 발행을 더욱 촉진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미 연방준비제도보다 빠르게 금리를 인하하면서, 차입 비용 차이가 벌어진 것도 원인이다. 4월 ECB는 기준금리를 2.25%로 인하한 반면, 연준은 올해 기준금리를 4.25~4.5% 수준에서 세 번 연속 동결했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와 독일 국채 간 금리차는 지난해 12월 2%를 넘었고, 현재는 1.8% 수준이다. 올해 4월 기준 투자등급 회사채 시장도 마찬가지로 미국 내 금리가 유럽보다 약 2% 높다.
웰스파고의 제임스 매리엇 국제채권본부장은 “리버스양키본드는 미국 시장에도 강력한 신호를 보낸다”며 “유로화로도 달러화 못지않은 대형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발행 기업들에게 매우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