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원순석 5.18기념재단 이사장
“군사반란세력 비자금 대물림이 12.3 계엄사태 근본 원인”
불완전한 내란범 처벌·단절이 잘못된 역사 반복 여지 남겨
새 정부, 12.12 완전한 종식 위해 불법축재 환수 앞장서야
5.18 등 민주화운동정신 헌법 전문 명기해야 독재 반복 안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에 등장한 메모지로 촉발된 6공 비자금 논란이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일가 전체로 번졌다. 항소심 과정에서 등장한 김옥숙 여사의 메모가 명백한 비자금 증거라며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노 전 대통령의 범죄수익을 환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내일신문은 노씨 일가를 검찰에 고발한 5.18기념재단 원순석 이사장을 만나 그 배경에 대해 들었다. 원 이사장은 “축재한 불법자금을 대물림하게 만든 불완전한 내란 처벌과 단절이 결국 윤석열의 12.3 계엄사태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편집자주>편집자주>
●지난해 ‘노태우 비자금’이 갑작스럽게 등장했다. 이 비자금의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에도 비자금이 있을 것이란 의심을 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대물림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밝힌 것이다. 사회 정의나 역사 정의 측면에서 이런 대물림을 어떻게 인정할 수 있겠나.
5.18기념재단은 지난해 10월 노태우의 범죄수익 은닉 상황에 대한 실체를 규명하고 책임자를 엄벌해 달라며 노씨 일가 세 사람을 조세범처벌법,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특별법,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불법으로 축재한 비자금이 후손을 비롯한 그들의 가족에게 대물림되는 현실에 개탄하게 된다. 비자금은 반드시 환수되어야 한다. 법률을 제정 및 개정해서 후손들에게 증여된 불법재산까지 기필코 환수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역사 정의를 세우는 것이다.
●비자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12.12 군사반란 청산도 끝나지 않은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그렇다. 역사의 심판은 끝나지 않았다. 정의는 결코 타협할 수 없으며, 반란·내란의 우두머리들이 숨겨놓은 부당한 재산은 단 한 푼도 용납될 수 없다.
우리 재단은 이 문제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전두환과 노태우 일가와 12.12 군사반란 가담세력의 불법재산을 끝까지 추적하고 국민에게 환원하기 위한 모든 법적·사회적 행동을 전개할 것이다.
●최근 재단을 중심으로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환수위원회’를 발족했다. 그 의미와 앞으로 역할에 대해 설명해 달라.
1980년 5.18 이후 정권을 찬탈한 전·노씨와 이들을 추종한 신군부 세력이 조성한 비자금과 부정 축재한 재산을 환수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1997년 대법원 형확정 판결 이후 추징금만 간헐적으로 집행됐을 뿐 부정축재 재산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이 없다.
최근 자녀 이혼 소송 중 노씨 부인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904억원의 비자금 조성 메모가 법원에 증거로 제출됐다. 불법으로 축재한 비자금이 후손을 비롯한 그들의 가족에게 증여된 것이다. 이에 신군부 비자금과 부정축재 재산을 완전히 환수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불법 자금이 후손에게 증여되는 악순환을 끊기 위한 우리 재단의 활동이 필요해 전·노 비자금 환수위원회를 구성하게 됐다.
환수위는 재단 이사장을 중심으로 법률가 등 전문가로 구성된다. 전·노 등 신군부의 비자금과 후손에게 증여된 부정축재 환수 관련 법률 제·개정, 재산 추적, 환수 등의 활동을 벌일 것이다.
●일부에서는 시효 등을 이유로 환수가 쉽지 않다고 주장하는데.
그런 주장을 알고 있다. 하지만 시효나 사망을 이유로 추징을 면제하는 것은 사회 정의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만큼 끝까지 추적해 환수해야 마땅하다. 또 전·노 일가의 부정축재 재산을 철저히 수사해 불법 자금 흐름을 낱낱이 밝히고 필요한 관련법을 제정하거나 개정해 범죄수익이 대물림되는 일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
●재단도 이와 관련해 노씨 일가를 고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재단이 제출한 고발장에는 노씨 부인 김옥숙씨가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아들 노재헌 씨가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동아시아문화센터에 147억원을, 2022년 노태우센터에 5억원을 기부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또 올해에도 노태우센터에 5000만원을 추가 출연해 은닉재산이 여전히 불법 이전되고 있는 정황도 적시했다.
이처럼 최근까지 이어진 거액의 자금 흐름은 비자금 은닉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따라서 자금 흐름을 역추적하면 범죄행위의 전모를 밝히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럼에도 수사 속도는 더딘 것 같다. 검찰에 한마디 한다면.
지난 8일 성명서를 통해 검찰에게 노태우의 범죄수익 은닉재산 실체를 철저히 규명하라고 촉구했다. 지난해 10월, 고발 이후 반년이 지나도록 피고발자 소환이나 조사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최근에서야 노씨 일가의 금융계좌를 확보해 자금 흐름 파악에 착수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자금 흐름을 역추적한다면 범죄행위 전모를 밝히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검찰은 더 이상 수사를 지체해서는 안 된다. 검찰은 범죄수익을 끝까지 추적해 단 한 푼도 빠짐없이 환수해야 한다. 또 범죄수익 은닉에 가담한 노씨 일가에 대해서도 철저한 수사와 법에 따른 엄중한 처벌을 강력히 촉구한다.
●관련 법안이 여러 건 제출됐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입법 활동도 지지부진했다. 이에 대한 입장이 있다면.
지난 12.3비상계엄과 탄핵, 파면 그리고 대선 정국에 들어오면서 입법 활동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관계기관과 정치인들은 조속한 입법 활동과 그에 따른 후속 조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5.18민주화운동 45주년을 맞았다. 최근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명기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재단에서도 오랫동안 이를 주장한 것으로 알고 있다. 헌법 전문 명기의 당위성과 그 의미는 무엇인가.
시대적 과제이자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부마민주항쟁과 5.18민주화운동, 6.10항쟁의 민주이념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는 것은 민주화운동의 헌법적 위상과 가치를 정립한다는 의미가 있다. 또한 5.18에 대한 왜곡과 폄훼를 근절하고 민주화운동에 대한 미래세대의 올바른 정신계승을 위해 헌법 전문 수록이 되어야 한다.
덧붙여 다시는 지난 12.3비상계엄과 같은 잘못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5.18을 비롯해 민주화운동들의 정신이 헌법 전문에 수록돼야 한다.
●아직도 5.18민주화운동과 그 정신을 폄훼하는 사례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를 꼽는다면.
지만원이라는 인물이 한참동안 5.18을 북한군과 연계해 왜곡 폄훼했고, 실형을 살기도 했다. 그런데 한 인터넷 매체가 지씨 주장과 신원불명의 계엄군·탈북자 등의 증언을 근거로 왜곡 보도를 계획적으로 진행해 왔다. 우리 재단은 지난 5월 1일 유족들과 함께 매체의 기자와 대표를 고소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가 미흡해 엄벌이 쉽지 않다. 왜곡·폄훼에 대한 법률제정과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5.18 특별법)’ 개정이 필요한 대목이다.
●재단에 대해 아직 모르는 국민들이 있다. 재단의 설립배경과 역할은 무엇인가.
재단은 5.18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국가와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1994년 창립됐다. 뜻을 같이 하는 광주시민, 해외동포를 포함한 국민들의 기금과 성금, 피해자들의 보상금 출연 등 소중한 정성이 모여 설립된 순수 민간재단이다. 5.18정신 계승을 위한 재단의 여러 활동 중에 특히, 진상규명은 언제나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재단은 ‘5.18 학살책임자 고소 고발 운동’을 범국민적으로 전개했다. 그 결과 전·노씨 등 학살책임자들을 법정에 세워 처벌을 이끌어냈다.
또한 재단은 5월 18일 국가기념일 제정과 국립5.18민주묘지 건립, 5.18민주유공자예우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 제정 등에 기여했으며 교과서에 5.18민주화운동을 실을 수 있게 노력했다. 이런 재단 활동은 과거 ‘폭도·사태’ 등으로 부정됐던 5.18을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했다. 앞으로도 재단은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5.18 진상규명과 기억·기념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지속할 것이다.
●현재 재단의 주요 사업과 앞으로의 과제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가.
재단은 설립 당시부터 제기됐던 교육·연구·문화교류 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재단은 학교 교육과정에 5.18교육을 포함시키기 위해 인정교과서를 개발하고 교사와 연구자들이 참여해 5월 교육원칙을 만들었다. 지금도 교사 연구와 교육활동가 양성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나아가 재단은 광주인권상,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민주 인권 평화를 위한 연대와 교류를 실천하고 있다. 이는 재단이 민주·인권·평화 문제가 가장 심각한 곳에 지원과 연대를 해 5.18정신 계승을 기반으로 국내외 단체들을 잇는 거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울러 5.18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국내외 학술 활동, 연구자 지원, 5.18 현안 대응을 위한 전문가 세미나 등의 활동을 끊임없이 지속하는 한편 5.18 왜곡·폄훼 세력에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30여년에 걸친 재단의 노력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문제, 완전한 진상규명 문제, 5.18 왜곡과 폄훼 대응 문제 등은 현재진행형으로 남아있다. 2030년이면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난지 50주년이 된다. 벌써 45년이 지났고 이미 5.18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다수다. 비경험 세대에게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이 계승되도록 충분한 교육과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이런 일들에 5.18기념재단이 앞장설 것이다.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지만 재단의 존재 이유가 이를 극복하고 5.18정신 계승을 끊임없이 새롭게 추진해 가는 것에 있다.
●6월 4일이면 새로운 정부가 탄생한다. 다음 정부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의 바람은 세 가지다. 우선 헌법 전문에 5.18정신을 수록해달라는 것이다. 그 다음은 후손들에게 대물림된 전·노 비자금을 환수할 수 있는 법적 근거 마련이다. 마지막으로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폄훼하는 세력에 대해 형사적인 응징을 할 수 있도록 5.18 특별법을 개정해 달라는 것이다. 광주를 방문하는 모든 후보자들에게 우리의 의사를 전달할 것이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