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외교성과 뒤덮은 경제 불안
중동 순방 마무리 직후 미 신용등급 강등 … 소비 위축에 재정 악화도 겹쳐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등을 순방하며 수백억 달러 규모의 투자 협정과 경제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일론 머스크를 비롯한 주요 기업인과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대거 동행한 이번 순방은 “미국 경제에 대한 자신감의 표시”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귀국길에 오른 트럼프 대통령에게 날아든 뉴스는 무거웠다. 17일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미국의 재정지표가 악화돼 더 이상 최고 등급을 유지할 수 없다”며 등급 하향을 발표했다. 이로써 미국은 사상 처음으로 3대 신용평가사 모두에게서 ‘트리플 A’ 등급을 상실하게 됐다.
무디스는 특히 정부 지출 확대, 세입 부족, 이자 비용 증가 등을 지적하며 “재정 적자가 2024년 GDP의 6.4%에서 2035년까지 GDP의 9%에 육박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같은 날 발표된 미시간대 소비자심리지수는 4월의 52.2에서 1.4포인트 하락한 50.8로 2022년 6월(50.0)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1년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4.9%로 상승해 32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세계 최대 소매업체 월마트는 이번 주 “미중 무역완화에도 불구하고 상품 가격을 인상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 바 있다.
여기에 더해 트럼프 대통령이 강력히 추진해온 2017년 감세 연장과 정부 지출 삭감을 골자로 한 ‘빅 뷰티풀 법안(Big Beautiful Bill)’은 하원 예산위원회 보수 강경파의 반대로 제동이 걸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법안 추진을 반대한 공화당 내 일부 의원들을 겨냥해 “공화당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며 “이견은 멈추고 지금 당장 통과시켜야 한다”고 자신의 SNS 계정에 글을 올렸다.
하지만 공화당 내 온건파는 주·지방세(SALT·State and Local Taxes) 공제 확대를 요구하고 있어 법안 통과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SALT 공제는 납세자가 연방 세금 보고 때 공제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주·지방의 세금(소득세, 재산세 등)을 말한다. 2017년 세제개편으로 공제 한도가 최대 1만달러로 제한돼 있다.
16일 초당적 민간 연구기관인 책임예산위원회(CRFB)는 해당 법안이 향후 10년간 미 연방 부채를 3조3000억달러 증가시킬 수 있다며, 2022년 영국의 예산 위기와 유사한 대규모 국채 매도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소비자 심리지수는 최근 미국과 중국이 스위스에서 발표한 관세 완화 합의를 반영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15일 세계 최대 소매업체 월마트는 이번 주 “미중 무역전쟁 완화에도 불구하고 상품 가격을 인상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 바 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17일 보고서에서 “최근 일부 관세 철회를 위한 협상이 주식시장의 강한 반등을 이끌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은 여전히 관세의 인플레이션 파급 효과를 가장 큰 우려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소비자들은 개인 재정 상황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으며, 향후 소득 증가세가 약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리얼클리어폴리틱스 여론조사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대 여론이 여전히 과반(50.1%)을 상회하고 있다. 이는 지난 4월 말 7.1%포인트였던 반대 우위 격차보다는 다소 줄어든 수치지만, 1월 취임 초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기록했던 6%포인트의 긍정 평가 우위에 비하면 큰 폭으로 하락한 것이다.
국제무대에서는 ‘경제 리더십’을 강조한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에서는 재정 악화와 소비 위축, 정치적 난항이라는 3중고에 직면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