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칼럼
중도 보수와 지속가능성, 어떻게 양립할 것인가?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심판(The Trial)’은 인간의 실존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불친절한 문체로 설파한다. 주인공 요세프 K처럼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이라는 판결을 받지만 집행의 시기를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잊고 살아간다. 이유도 모른 채 기소당하고 구금되지도 않고 일상 생활을 한다. 죄목과 변호할 방법도 모른다. 종국에는 존재했다는 이유만으로 사형당한다.
개별 인간의 집합체인 인류도 멸망하게 설계되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알고 있다 하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지금까지의 구조와 방식으로 살아간다. 멸망의 순간에도 왜 그리고 누구 때문에 죽음을 맞는지 모른다. 다만 존재했기 때문에 사라질 뿐이다.
인류가 처한 환경위기, 특히 기후변화를 생각하면 우리 시대에 대한 카프카의 예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얘기한다. “어떤 지점에 이르면 돌아갈 수 없는 지점이 있다. 그 지점에 도달해야만 한다.”
모든 존재에는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이르는 것을 피할 수 없으며 동시에 그 지점에 도달해야 비로소 진전이 가능하며 여정이 마무리된다. 소설은 난해한 표현들로 가득 차 있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인류의 재앙적 미래에 맞는 은유를 포함하고 있다.
환경문제, 정해진 운명의 끝 향해 달려가
환경뉴스 데이터 플랫폼인 Earth.org가 올해 초 제시한 2025년 15개 환경 문제 특히 기후변화에 있어서 우리는 카프카의 은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24년에 전년 대비 평균기온이 0.12도 상승하여 역사적으로 가장 더운 해를 기록했다. 파리협약에서 정한 1.5도 억제 목표를 이미 초과하여 산업혁명 전 대비 1.6도 상승했다.
또한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가 2023년 역사적 최고치를 기록해 향후 배출량 증가가 없어도 수년간 평균 기온은 계속 상승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도 우리는 무감각하고 무심한 일상을 보낸다. 하지만 운명론적인 슬픈 예감에 지배당한 삶이 마냥 즐거울 수는 없다.
개인과 조직의 이기적 본능으로 실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정치와 사회의 구조적 오류와 편향성을 바로잡을 집합 지성의 발현이 불가능하므로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훼손 등 많은 환경문제는 정해진 운명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사형선고를 받은 이유도 그것이 우리 개인의 죄가 아니라고 항변할 능력도 없이 우리는 돌아갈 수 없는 지점을 이미 넘어서고 있다.
재생에너지 기술발전이 대안이 되기 어렵다는 경험적 인식에도 기술 특히 위성 및 AI 산업발전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 기술발전과 마찬가지로 AI는 그 자체로서 기후변화를 악화시키며 기술발전이 더 큰 물질적 수요 증가를 가져와 개선을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해법이 동시에 문제를 일으키는 구조의 대표적 사례가 AI 산업 발전과 기후변화 이슈이다. 엄청난 에너지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AI 산업이 원자력 발전을 대안으로 선택하는 것이 인류의 존재를 위협하는 실존의 위기를 필연적으로 초래할 수도 있다.
경제체제 측면에서 환경파괴나 부의 불평등 등의 지속가능성 이슈는 근본적으로 규제의 영역이다. 미국에서 정치적인 요인으로 인한 ESG투자 흐름이 후퇴했다는 점이나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가 경쟁력 논리에 기초해 옴니버스 제안을 통해 지속가능 성공시 규제를 완화한 사례가 있다.
이는 시장의 실패를 강력한 규제로 수정하기보다 부담 경감과 산업발전이라는 경쟁력 논리로 지속가능성 이슈를 대응해온 각국의 정책에 대한 보수적인 정치세력 및 산업계의 본격적 반발로 나타나는 시대적 역풍 (backlash)이다.
시장의 효율성 논리를 규제에도 적용하려는 정치적 보주주의자들의 접근은 이미 늦어버린 기후 대응을 고착화한다.
자유주의 시장경제가 우리 시대의 지배적 경제체제로 지속하기 위해서는 시장기능을 기반으로 한 변화만으로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즉 시장 자체를 수정하는 강력한 규제정책으로 돌아가야 한다.
트럼프정권의 극단적 반지속가능성 정책은 역설적으로 절망을 극대화하여 시대적 반면교사 역할을 할 것이다. 오히려 정치 이념과 철학적 가치 판단에서 혼란의 과도기를 겪고 있는 우리 나라의 상황이 더 엄중하다.
중도보수적 지속가능정책 지켜볼 필요
주술, 극우주의, 검찰 세력이 지배하는 무능한 관료 사회로 점철된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이념적 정책적 혼란이 지속가능 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데 진보 정당의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가 중도보수를 자처하고 나선 것은 선거용 단기 술책이라도 문제이지만 아니라면 더욱 더 큰 이념과 정책 갈등을 겪게 될 것이다.
또 다시 이념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에 국력을 낭비해서는 안 되겠지만 중도보수가 지속가능한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 지지세력인 시민사회와 국민 대다수가 지켜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