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신흥국 증시 베팅 늘려
‘지지부진한 15년 끝났다’ 판단
월가의 신흥국시장 강세론자들이 마침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신흥국 증시는 지난 십수년 간 미국증시가 지속상승하면서 외면받던 시장이다.
18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모간스탠리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와 AQR캐피털매니지먼트,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프랭클린 템플턴 등은 ‘글로벌 투자환경이 마침내 개발도상국 증시에 우호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데 베팅하고 있는 주요 월가 은행들이다.
BofA는 신흥국 증시를 ‘차기 강세장’이라고 불렀고, AQR은 신흥국 증시가 향후 5~10년 동안 연 평균 약 6% 수익률을 낼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미증시 예상수익률 4%보다 높다.
최근 S&P500지수는 회복세를 보이지만 연초부터 따지면 보합세다. 반면 신흥국 지수는 10% 상승했다. 이는 지지부진했던 신흥국 증시가 마침내 기지개를 펴고 있다는 기대감을 자극하고 있다. 지난 15년 동안 S&P500 지수는 400% 넘게 상승한 반면 신흥국 지수는 7% 상승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냈다.
신흥국 증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미국 트럼프정부가 무역전쟁을 벌이면서 달러가치가 추락하고 S&P500의 변동성이 커지는 한편 미국채 안전성에 의구심이 커졌다. 미국정부 부채와 재정적자가 커지면서 신용등급이 하락한 것도 미증시 예외주의에 타격을 가하는 상황이다. 이에 투자자들은 점차 미국 이외의 시장을 찾아나서고 있다.
일부 투자자는 엔화나 유로화, 독일 분트(국채) 등 경제선진국 자산을 미국시장의 대안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좀더 리스크를 떠안고자 하는 투자자들은 신흥국으로 향하고 있다. 시장이 불안할 때 신흥국 시장에서 돈을 빼 미국시장에 집어넣던 관행을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프랭클린 템플턴의 투자전략가 크리스티 탠은 “달러의 가치하락 리스크는 투자자들에겐 경고음이다. 미국예외주의는 당분간 사라질 것”이라며 신흥국 국채를 미국채의 대안으로 꼽았다.
AQR은 올해 들어 4월까지 넉달 연속 가치가 하락한 달러는 신흥국 통화가 달러 환산시 이익을 낸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올해 들어 5% 상승한 MSCI 신흥시장 통화지수는 이달 초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모간스탠리 인베스트먼트의 투자책임 부관리자인 지타냐 칸다리는 “마침내 신흥국 증시 전환의 촉매제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2년 전 미국에서 신흥국 증시로 투자방향을 전환하면서 신흥국 시대가 도래했다고 장담한 인물이다.
칸다리는 “역사적 평균에 기반해 분석하면 달러약세는 신흥국 주식 수익률의 1/3을 견인할 수 있다”고 말하며 큰 자신감을 드러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2년 미증시 상승률에 못 미쳤던 그의 펀드는 올해 17% 수익률을 냈다.
그는 신흥국 내 수요가 강한 금융, 전력화, 헬스, 방산 부문 주식을 주시하고 있다. 미국 고율관세에 잘 견딜 분야라는 것. AQR 이사 크리스 도허니는 중장기적으로 상승폭이 큰 투자대상으로 신흥국기업 중소형주를 꼽았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달 5~9일 5거래일 동안 신흥국 시장 전반이나 특정 신흥국에 투자하는 미국상장 ETF로의 자금유입이 18억4000만달러에 달했다.
물론 신흥국들엔 정치적 격변 등 주기적인 불안요소가 있다. 또 달러자산에 비하면 거래비용이 여전히 비싸다. 때문에 투자자들이 선뜻 신흥국으로 투자방향을 전환하기 힘들다.
JP모간 자산운용의 미주 최고시장전략가인 가브리엘라 산토스는 “때문에 현재까지 미국에서 신흥국으로의 투자전환이 자본흐름 데이터에는 크게 잡히지 않는다. 반면 유럽주식에 대한 수요는 데이터에 포착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달러가치가 지속 하락한다면, 신흥국 시장에 긍정적 방향의 파급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부채부담이 큰 미국정부와 달리 주요 신흥국들의 경기부양 실탄이 넉넉한 점도 호재라는 분석이다. 프랭클린 템플턴의 탠 전략가는 “튀르키예와 사우디아라비아 한국 그리고 여러 아시아 국가들의 펀더멘털은 강하다. 외채가 적고 GDP 대비 부채가 낮다”며 “부채부담이 적은 건 특히 미국과 비교해 상당한 매력”이라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