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상 주요자산 아니면 반출해도 배임아냐”
1·2심 “임무 위배 행위” 징역 1년·집유 2년
대법 “공개정보 업무상배임 성립안돼” 파기
퇴사하면서 회사 자료를 반출했더라도 통상적으로 입수할 수 있는 정보라면 회사의 ‘영업상 주요한 자산’에 해당하지 않아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지난달 24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19일 밝혔다.
A씨는 조직수복용 재료(필러) 제조 업체인 B사에 2014년 11월부터 2019년 1월까지 근무했다. 그는 재직 중이던 2017년부터 2018년 사이 B사의 영업 자료를 반출해 2019년 1월 퇴사와 동시에 설립한 C사 컴퓨터에 복사했다. 이후 이 자료를 활용해 B사와 동일한 원료의 제품을 생산하고 2019년 11월 특허까지 출원했다.
문제가 된 자료는 △필러의 주된 원재료의 시험성적서 △동물이식 실험 결과 보고서 △필러의 주된 원재료 주문서였다.
1심은 이 자료들이 B사의 주요한 영업 자산이라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퇴사하며 반환 및 폐기하지 않은 채 반출한 이상, 이는 임무 위배 행위에 해당하고 그에 대한 고의도 있었다”며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했다.
2심도 “이 사건 각 자료 등을 피해 회사의 영업상 주요한 자산으로 인정하고 피고인에 대해 업무상 배임의 고의를 인정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며 항소 기각해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해당 자료가 B사의 영업상 주요 자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원심 판결을 파기했다.
대법원은 “무단으로 자료를 반출한 행위가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그 자료가 반드시 영업비밀에 해당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적어도 불특정 다수인에게 공개되지 않아 보유자를 통하지 않고는 통상 입수할 수 없고, 보유자가 그 사용을 통해 경쟁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정도의 영업상 주요한 자산에는 해당해야 한다”는 판례를 제시했다.
대법원은 “필러의 시험성적서는 제조업체가 작성해 구매자인 B사에게 제공한 것으로 그 제조번호에 해당하는 제품이 품질 기준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보증하는 문서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A씨가 반출한 동물이식 실험 결과보고서의 경우 구체적 제품명이 특정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실험 결과의 주된 내용이 이듬해 발표된 학위논문에 담겨있고, 견적 정보 역시 당시 제품을 구매하려는 사람이라면 통상 입수할 수 있었던 정보라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 각 자료에 기재된 정보는 보유자인 B사를 통하지 않고서도 통상 입수할 수 있고, B사가 이 사건 각 자료의 정보를 사용해 경쟁상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보기 어려워, 이 사건 각 자료는 피해 회사의 영업상 주요한 자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이번 판결은 업무상배임죄 성립을 위한 ‘영업상 주요 자산’의 기준을 명확히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직원이 회사 자료를 무단으로 반출하더라도, 그 자료가 일반적으로 입수 가능한 정보이거나 경쟁상 이익을 얻을 수 없는 수준이라면 업무상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