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해운사 운임 담합 제재 가능”
대법 “예외 규정 없으면 공정거래법은 모든 산업에 적용”
고려해운·HMM·장금상선·팬오션 등 과징금 부과될 듯
해운협회 “법리적 오해”…해수부 “법 규정 명확치 않아”
외국 국적 선사가 공정거래위원회의 해상 운임 담합 제재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대법원은 해운업계의 운임 담합에 대해 공정위가 제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해운법 29조를 근거로 공정거래위원회의 해상운임 담합 제재에 대한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는 고려해운·HMM·장금상선·팬오션 등 국내외 23개 해운사가 이번 외국 선사의 패소로 과징금 부과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해운협회와 해양수산부가 법리적 오해와 법 규정의 불명확 등을 이유로 문제 삼고 있어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에 대한 파기환송심의 선고 결과가 주목된다.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지난달 24일 대만 국적 해운사 에버그린마린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 등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18일 밝혔다.
공정위는 2022년 에버그린마린을 비롯해 HMM·팬오션·고려해운·장금상선 등 국내외 해운사 23곳이 2003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동남아 항로에서 총 120차례 운임을 담합한 사실을 적발했다. 공정위는 시정명령과 함께 총 96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 가운데 에버그린에는 33억9900만원이 부과됐다. 공정위의 처분은 1심 판단과 같은 성격을 갖는다.
해당 제재를 두고 해운사들은 “해운법상 운임 인상은 해양수산부에 사전 신고한 정당한 공동행위”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18차례 운임 인상안을 해수부에 신고했고, 문제가 된 운임 담합도 이러한 절차에 따른 것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담합 행위는 총 120차례에 달했고, 신고된 내용과 시기·방식도 상당 부분 다르다”며 해당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운사들은 공정위 제재를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각자 냈다.
에버그린은 가장 먼저 공정위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에버그린 등 해운사들은 재판 과정에서 “공정위는 해운법상 공동행위를 규제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다.
서울고법은 지난 2월 공정위의 과징금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해운법에 따르면 외항 해운사들 운임에 관한 공동행위는 해양수산부장관만이 배타적 규제권한을 가진다”라며 “공정위에게는 이를 규제할 권한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심 판결을 뒤집었다. 공정위가 해운사 운임 담합에 대해 제재할 권한이 있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공정거래법 입법 취지 등에 비추어 볼 때, 이 법은 국민경제 전반에 걸쳐 헌법상 요구되는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를 구현하기 위한 법률”이라면서 “다른 법률에 특별한 정함이 없는 이상 모든 산업분야에 적용돼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은 이어 “해운법에는 가격담합 행위에 대해 공정거래법 적용을 제외한다는 명시적 규정이 없다”며 “이 사건 가격담합 행위에 해운법이 배타적으로 적용된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해운법이 가격담합 행위에 대한 해수부 장관 권한을 인정했다고 해서, 공정거래법 적용이 아예 안 된다고 볼 수는 없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양창호 해운협회 부회장은 “대법원 판결은 신고하지 않은 것은 공정위도 규제할 수 있다는 것이지 이번 건이 신고하지 않은 건이라고 적시한 것은 아니다”라며 “이번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 대해 해운법 대신 공정거래법을 적용한 것은 법리적 오해가 있다고 계속 따져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정위의 제재 방침에 공개적으로 반대해 온 해수부 오영록 해운정책과장은 “해운사들의 운임에 관한 공동행위를 어디까지 구체적으로 신고해야 하는지에 대해 법에 명확히 안돼 있다”며 “이는 나중에 제도개선할 문제이지 현행 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김인현 고려대 해상법연구센터 소장은 “대법원의 판결내용은 규제권한을 누가 갖느냐에서 신고하지 않은 것, 숨기려고 하는 것은 공정위도 규제 권한이 있다고 한 것”이라며 “공정위가 규제권한을 갖는다고 해도 과징금 부과 자체가 정당한지 여부는 고법에서 다퉈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대법원 판결은 에버그린과 함께 과징금을 부과받은 다른 해운사 22개의 소송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다른 소송들은 아직 2심 선고가 내려지지 않은 상태다.
김선일·정연근·성홍식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