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에 ‘기술’ 더한 월마트, 거침없는 성장세
지난해 매출·직원 기준 세계 최고기업 … 이코노미스트지 “트럼프관세에도 큰 타격 없을 전망”
월마트가 최근 관세발 가격인상을 선언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로했다. 월마트 가격인상은 미국인 일상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물가상승을 견인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월마트 지배력은 대단하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에서 월마트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 눈길을 끌었다. 10여년 전만 해도 월마트는 위기에 몰렸다. 온라인서점으로 시작해 ‘모든 것을 파는 가게’로 변신한 아마존이 소매유통시장을 뒤흔들고 있었다. 아마존의 상품 다양성과 문앞 배송서비스에 견주면 넒기만 한 월마트의 교외매장은 과거의 유물처럼 보였다. 월마트 매출은 감소세였고 이익은 급감했다.
하지만 월마트는 부활했다. 지난해 매출은 6800억달러, 고용직원은 210만명이었다. 두 지표 모두 세계 최고다. 미국에서 자동차를 제외한 소매 지출의 10%, 식료품 지출의 25%를 월마트가 가져간다.
이런 월마트에 투자자들도 아낌없이 지갑을 열고 있다. 지난 1년간 시가총액이 50% 이상 급증해 7500억달러를 넘어섰다. 주가수익비율은 40에 육박한다. 알파벳과 아마존 애플 메타 마이크로소프트(MS)보다 높다. 트럼프정부의 무역전쟁이 글로벌 공급망을 교란시키고 유통시장을 압박하는 상황이지만 월마트는 이달 15일 분기 실적발표에서 올해 매출이 3~4%의 안정적인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영업 이익은 더 많이 증가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과거의 유물처럼 여겨졌지만…
과거의 유물처럼 보였던 월마트가 부활한 비결은 뭘까. 이코노미스트지는 “더그 맥밀런 최고경영자(CEO)가 이끄는 월마트는 이익을 새로운 기술에 재투자하는 한편 오프라인 인프라를 활용해 아마존의 강점을 역공하는 전략으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맥밀런은 2014년 CEO에 올랐다. 그는 1980년대 월마트 아칸소주 창고에서 트럭에 화물을 싣는 일로 경력을 시작했다. 당시 월마트 창고는 작고 시끄럽고 붐비는 곳이었다. 직원들은 트레일러에서 상자를 내려 손으로 물품을 분류했다.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월마트 최신 창고는 컨베이어벨트와 컴퓨터화면, 제품을 조용히 골라 포장하는 로봇팔로 가득 차 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물품 상하차와 분류·적재를 진행한다. 깨지기 쉬운 물품은 위쪽에, 출고가 시급한 제품은 앞쪽에, 같은 통로에 배치될 물품은 함께 묶인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시애틀에 본사를 둔 기술대기업들의 모습과 유사하다”고 전했다.
1962년 설립된 월마트는 비용절감을 통한 가격인하로 시장점유율을 확보한 뒤 규모를 활용해 비용을 더 낮추는 전략으로 성장해왔다. 시간이 지나 식음료품을 추가해 거대한 할인점(슈퍼센터)을 열었다. 고객은 이곳에서 총기부터 버터까지 모든 것을 구매할 수 있다. 약국에서 처방약을 수령하고 정비소에서 타이어 점검을 받는다.
월마트는 이제 전자상거래를 성장동력의 중심으로 삼았다. 이 기업 커뮤니케이션 담당 최고책임자 댄 바틀릿은 “2000년대 초 전자상거래의 첫번째 물결을 놓쳤다”고 인정했다. 월마트의 강점은 물리적 매장 네트워크에 있었다. 미국 전역에서 약 5000개의 매장을 운영한다. 미국인 90%가 16㎞ 이내에서 월마트 매장을 이용할 수 있다.
맥밀런 CEO는 이 인프라를 활용해 온라인 판매를 확대했다. 1곳당 평균 12만개의 제품을 보유한 슈퍼센터는 물류허브로 전환됐다. 매장 지원을 위해 건설된 창고도 온라인 주문 처리에 활용된다. 아마존과 유사한 제3자 마켓플레이스를 통해 월마트는 온라인 상품라인업을 수억개로 확장했다. 플랫폼에 입점한 많은 판매업체는 매출 일부를 월마트에 낸다. 물류네트워크 사용료도 추가로 낸다. 모간스탠리 추산에 따르면 월마트는 제3자 판매액의 12%를, 그리고 보관 포장 배송 비용으로 평균 8%를 추가로 받는다고 추산했다.
인프라 강점 기반으로 기술 투자에 전력
리서치기업 e마케터에 따르면 월마트는 지난해 미국 전자상거래 부문에서 1000억달러 넘는 매출을 기록했다. 아마존 4800억달러에 비해 여전히 큰 격차가 있다. 하지만 월마트 온라인 매출은 연간 약 20% 상승해 아마존보다 2배 빠르다. 특히 온도관리가 필요하고 빠른 배송이 요구되는 식료품 분야에서 이미 선두를 차지했다.
전자상거래는 새로운 수익원을 열었다. 월마트는 아마존 프라임과 유사한 멤버십 프로그램 ‘월마트 플러스(+)’를 운영한다. 월 8.17달러를 내면 무료배송 등 혜택을 제공한다. 월마트는 계열사 샘스클럽과 결합해 지난해 멤버십 프로그램에서만 38억달러를 벌어들였다. 5년 전 매출의 2배다.
월마트는 전자상거래를 통해 수집한 방대한 독점데이터를 통해 고객에게 맞춤형광고를 내보낸다. 고객이 광고 제품을 구매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월마트 매장에는 광고를 재생하는 스크린이 설치돼 있으며, 월마트 앱에도 광고가 가득하다. 또 스마트TV 제조사 ‘비지오’를 인수하면서 TV를 통해서도 시청자에게 광고를 내보낸다.
이같은 광고매출은 지난해 44억달러에 달했다. 전년 대비 30% 늘었다. 전체 매출에 비하면 작은 규모지만 광고매출 운영마진은 약 70%에 달한다. 모간스탠리는 “광고매출이 지난해 월마트 운영이익의 10%를 차지했다”며 2027년엔 16%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월마트는 수익을 재투자해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애초에도 새로운 기술 도입의 선구자였다. 1960년대 후반 컴퓨터가 기업환경을 변화시키자 창업자 샘 월튼은 IBM의 컴퓨터강좌에 등록해 공부했다. 이후 전국 최대 규모의 사설 위성시스템을 구축해 매장 간 연결을 강화했다. 현재 월마트는 전자상거래 분야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진행중이다.
지난해 자본지출은 240억달러로 2019년 대비 2배 늘었다. 영업활동 현금흐름의 2/3에 해당하는 액수다. 현재 월마트는 고객이 제품을 찾는 데 도움을 주는 AI보조도구 ‘스파키’와 상품기획팀이 판매할 상품을 선택하는 데 도움을 주는 ‘월리’를 훈련시키고 있다.
월마트의 다음 목표는 고급브랜드다. 저소득층과 중산층 미국인의 선호브랜드로 자리 잡은 월마트는 이제 고소득층 소비자를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프리미엄 식품브랜드 ‘베터굿즈’를 출시해 고급 슈퍼마켓인 홀푸드와 겨루고 있다.
해외시장으로도 눈을 돌리고 있다. 월마트멕시코는 현지증시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큰 기업이다. 중국에서는 샘스클럽 회원권이 중산층 진입 티켓으로 여겨질 정도다. 두 국가에서 월마트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인식된다. 인도에서는 현지 온라인 마켓플레이스 ‘플립카트’, 결제앱 ‘폰페’의 지배주주다. 2021년 이후 월마트의 글로벌 부문은 빠르게 성장했다. 2024~2028년 이 부문 매출과 영업이익이 2배 늘어날 전망이다.
월마트는 또 다른 파괴적 요인과 맞서고 있다. 바로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럼프정부 관세전쟁으로 월마트도 어려운 처지에 몰렸다. 월마트 경영진은 아칸소주 본사와 워싱턴을 오가며 물가와 고객 쇼핑패턴에 대한 실시간 데이터를 트럼프정부와 공유한다. 월마트 미국사업 담당자 존 퍼너는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은 매우 유동적”이라고 말했다.
경쟁사들 비해 관세충격 적을 듯
월마트가 미국에서 판매하는 상품의 약 1/3은 중국과 멕시코 캐나다 등 해외에서 온다. 이 중 일부는 월마트가 외국공급업체로부터 직접 구매한 것이고, 나머지는 월마트의 가격인하 압력에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한 미국기업들로부터 공급받고 있다.
하지만 월마트의 상황은 경쟁사들보다 한결 낫다는 분석이다. 미국 투자은행 번스타인은 “월마트가 지난 수년간 중국 중심 공급망을 다각화하는 데 진전을 이뤘다”며 “인도에서 공급받는 몫을 계속 늘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월마트는 또 자국내 공급망도 확장하고 있다. 중국에서 공급받던 어린이용 자동차시트 상당량을 대선을 코앞에 둔 지난해 10월 미국 제조업체들로 전환했다.
월마트의 규모는 관세부담을 공급업체로 전가하는 데 유리하다. 미중 관세휴전이 합의되기 전, 번스타인은 수입관세로 월마트에서 판매되는 제품 가격이 평균 5.2%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공급업체들이 그중 절반을 흡수하면 월마트 매장 평균 판매가격은 2.6% 상승할 것으로 추산됐다. 번스타인은 “가격인상에 따라 판매량은 2% 감소하겠지만 매출은 오히려 약 0.5% 순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다른 경쟁사들은 매출감소가 예상된다. 일단 월마트 제품구성을 따라오지 못한다. 가격변동에 덜 민감한 식료품이 월마트 미국 매출의 2/3를 차지한다. 반면 오프라인 경쟁사 타겟의 비중은 약 1/5, 온라인 경쟁사 아마존의 비중은 극히 적다.
규모의 경제와 그에 기반한 낮은 가격으로 월마트는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할 전망이다. JP모간체이스에 따르면 월마트 평균가격은 타겟보다 4~5%, 기타 식료품기업보다 8~10% 저렴하다. 월마트는 이 점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지난달 월가 분석가들과의 회의에서 맥밀런 CEO는 “공격적으로 영업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월마트 매장에는 벌써 ‘매니저특가’ 표지판이 등장해 할인행사를 적극 홍보하고 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