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 칼럼
한국 정치의 재건축
21대 대선이 눈앞이다. 하지만 손에 땀을 쥐는 유권자는 없다. 배번 ‘1번’ 후보가 멀찌감치 앞서 달린다. 뒤를 쫓는 ‘2번’과 ‘4번’은 중계방송 화면에나 잡힐 뿐, 연도에 응원하는 손짓도 미미하다. 결승선 주위에는 이미 선두주자 응원부대가 목을 빼고 기다린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겠다. 박지원 의원이 “60% 이상 득표”를 언급했다가 경고를 받았다. 이재명 후보 말마따나 “골프와 선거는 고개를 쳐들면 진다”는 거다. 대세론의 이회창씨가 연거푸 고배를 든 것도 ‘어대창(어차피 대통령은 이회창)’이라는 자신감이 화근이었을 것이다. 선거에 관한 한 ‘모사재인 성사재민(謀事在人 成事在民)’이다.
이번 대선 레이스는 승부보다 기록에 관심이 쏠리는 듯하다. 자유당의 이승만 대통령이 기록한 70~90%의 득표율을 제외하고 3공화국 이후 대체로 50% 안팎에서 승자가 결정됐다. 군복을 벗은 박정희 후보는 5대 대선에서 46.64%를 얻어 1.55%p 차이로 윤보선을 눌렀다. 서슬 퍼런 독재 치하에서 3선개헌으로 치러진 7대 대선에서는 53.19%를 기록해 김대중 후보를 가까스로 제쳤다. 이후 “더 이상 선거는 없을 것이다”는 DJ의 예언대로 장충체육관에서 99%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승부보다 득표율에 관심 쏠린 선거
87년체제에서 치러진 ‘1노3김’ 대선에 노태우는 36.64%로 당선된다. 이후 50%가 넘는 득표율은 51.55%를 기록한 박근혜 대통령이 유일하다. 과반 지지를 얻고도 탄핵 파면이라는 역사적 오점을 기록했다. 20대 대선은 0.73%p 차이로 승부가 갈렸다. 그 역시 탄핵 파면으로 현대사에 오점을 찍었고.
이런 측면에서 21대 대선을 보는 유권자는 과연 ‘마(魔)의 55%’ 선을 뚫을 것인지 여부에 관심을 쏟는다.
여기에는 두 가지 기대감이 교차한다고 본다. 첫째는 헌정질서를 유린한 내란행위에 대한 철저한 응징이다. 내란혐의로 재판 중인 윤석열 전 대통령은 여전히 기세가 등등하다. 단 한번의 대국민 사과도 없이 구속취소로 한강변을 활보하며 '부정선거, 신의 작품인가' 영화를 버젓이 감상한다. 비록 탈당했지만 그의 수하들은 여전히 국민의힘을 장악하고 있고.
김문수 후보는 “계엄으로 고통을 겪은 국민들께 죄송하다”고 했지만 윤석열을 잘라내지 못했다. 선거판은 ‘친윤’과 ‘찐윤’이 단상을 채운다. 이에 국민은 내란의 큰 불은 잡았지만 곳곳에 남은 잔불에 신경이 곤두선다. 언제 어떻게 불씨가 되살아날지 우려하며 확실한 진화를 바라고 있다.
둘째는 정치지형의 변화 가능성이다. 우리 정치에 고착된 지역주의 성곽의 일부가 혹시 무너지지 않을까, 그리하여 진보에서 보수까지 진정한 이념 스펙트럼으로 정당정치가 재편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거다. 언제부터 영남이 보수이고 호남이 진보인가. 정치적 지역 갈라치기에 휩쓸렸을 뿐 아닌가.
이재명 후보가 “민주당은 중도 보수”라고 했다가 구설에 올랐다. 하지만 DJ야말로 자유와 민주와 시장과 대중을 기반으로 한 보수주의를 자처했다. 이를 쿠데타 세력이 민주와 반민주 대립에서 YS와 3당 합당을 계기로 보수와 진보 갈등으로 둔갑시켰다. 진보는 빨갱이라고 색칠하면서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후보가 대구와 부산에서 의미 있는 득표율을 기록하면 지역할거 구태정치의 틀을 허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는 한국 현대 정치사의 물줄기를 바꿀 것이다. 민심은 그래서 이 후보가 승리만 관리하지 말고 역사에 헌신하는 자세로 막판 스퍼트하기 바라는 거다. 한국 정치에 ‘뉴 딜’이 펼쳐지는 거다. 지역 민심도 “이대로 안 된다”는 분위기라고 한다.
대선이 지나면 국민의힘은 선택의 기로에 놓일 것이다. 아파트로 보면 페인트 도색과 리모델링과 재건축 여부다. 언제까지 페인트로 겉치장만 할 것인가. 골조와 배관도 녹슬고 벽체는 갈라진 상태다. 차제에 리모델링보다 전면 재건축이 어떨까.
리모델링은 기존 구조체를 활용해 증축 수선하는 거다. 과연 효과적일까. 대선 후보를 키우지도 못하는 정당 아닌가. 20대 대선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1년 7월 30일 입당해 11월 4일 후보가 된다. 21대에는 김문수 후보가 4월 9일 입당해 5월 3일 최종 후보가 된다. 비록 실패했지만 한덕수 전 총리는 5월 10일 입당해 이튿날 후보등록 하려 했다.
한국 현대 정치사의 물줄기 바뀔까
그야말로 졸속 ‘용병정치’ 아닌가. 로마제국의 흥망에서 보듯 용병은 기존 정치체제를 무너뜨린다. 윤석열의 검찰정치가 딱 그렇다. 심각한 체제적 내상을 입은 국민의힘은 자칫 동서로마의 분열처럼 지역정당으로 쪼개질 수 있다.
차제에 민주당은 전국을 아우르는 수권 정당으로, 국민의힘은 지역을 벗어난 보편 정당으로 재건축하기 바란다.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도 우여곡절 끝에 재건축 공람이 21일 마감됐다. 우리 정치도 대선을 기해 미래형 재건축의 첫삽을 떴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