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영토는 하나, 국가는 둘’ 헌법과 남북 현실 사이
어렸을 때 동네에서 편싸움 놀이를 했다. 6.25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인데도 양편은 남북한이 아니라 미국과 소련이었다. 미국 편을 뽑은 아이들은 코가 크다는 흉내를, 소련 편을 뽑은 아이들은 춥다는 시늉을 하며 편을 나눴다. 우리의 운명이 전승국들의 ‘전후 처리’를 통해 결정됐다는 사실을 어린 마음에도 체감하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 헌법 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라고 규정한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국토와 영토를 같은 의미로 쓴다. 하지만 국토는 지리·역사·문화적 의미가 강한 반면 영토는 국가의 실효적 주권이 미치는 국제법적 권역을 뜻한다.
1919년 임시헌법은 ‘대한민국의 강토는 구한국의 판도로 한다’라고 규정했고, 1944년 임시헌장은 ‘대한의 고유한 판도’라고 표현했다. 영토를 ‘한반도’로의 규정은 제헌헌법 제정 과정에서 일본식 조선반도를 단지 한반도로 단어만 바꾼 결과다. 김귀식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강토 축소를 반대하며 임시정부 문구를 유지해야 한다고 했지만 소수 의견에 그쳤다.
헌법의 영토조항과 국제현실의 괴리
한반도로 규정된 우리 영토 북쪽 지역은 ‘우리 국토’이면서 우리 지배가 미치는 ‘영토’인가? 남북 정부는 1948년 8월 15일과 9월 9일 거의 동시에 성립했다. 같은 해 12월 12일 제3차 유엔총회 결의 195호는 ‘한반도 내에서 유효한 지배권과 관할권을 가진 합법 정부는 대한민국’임을 선언했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분단 초기부터 북한을 ‘대한민국 영토의 불법 점유자’라고 규정하고 서울에 이북5도청을 설치했다.
그러나 6.25 전쟁 때 유엔군이 점령한 북측 지역에 대한 한국 정부의 관료 파견 시도를 유엔군사령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부 국가들이 선거가 치러지지 않은 지역까지 남한정부가 통제할 수 없다고 주장해 유엔한국위원회(UNCOK) 대신 조직된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이 통제권을 갖게 되었다. UNCURK는 소련이 유엔에 복귀한 다음에 유엔총회 결의에 따라 구성되었다. 우리의 법적 영토 규정과 국제적 현실 사이에 괴리가 있었던 것이다.
1965년 한일협정에서도 한국이 한반도 전체를 대표한다는 우리 주장을 일본은 인정하지 않았다. 북한은 일본을 상대로 수교 협상을 시도할 외교적 근거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1991년 남북의 유엔 동시 가입은 국제적으로 두 개의 한국을 인정했다. 우리의 유엔 가입은 외교적 성과이면서, 어릴 때 편을 갈라 놀았던 미·소가 남북한을 국제사회의 주체로 인정한 것이다.
북쪽 지역을 우리의 실질적 영토로 만들 수 있는 통로는 헌법 제4조, 즉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추진한다’라는 조항이다. 이처럼 우리 헌법은 평화적 통합의 방법론까지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일부 정치인들은 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을 ‘위장평화 쇼’라고 규정했다. 그 반대는 ‘실질적 평화’이거나 ‘실질적 대결’이다. 정부가 대결구도를 강화할수록 북한 역시 반작용을 보이면서 ‘적대적 두 국가론’까지 나왔다. 이를 윤석열정부의 ‘자유의 북진’ 같은 흡수통일론적 언급에 대한 반작용으로 해석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북한정권의 붕괴가 통일의 시작이라거나 해답이라는 인식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이라크와 리비아의 정권 붕괴는 더 큰 혼란을 불러왔고, 남북은 살을 맞대고 있다.
북에 대한 행정·법적 통합은 국제적 승인, 남북 간 신뢰구축 등 복합요소가 맞물릴 때만 가능하다. “헌법상 영토”라는 주장 하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대결만으로는 통일도, 안정도 오지 않아
진보정부의 남북 정책이나 서독의 동방정책을 정치적으로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북한을 장기적으로 포용하며 통일 기반을 다지는 접근은 우리 역사에서도 배울 수 있다. 왕건의 포용정책이 통하고 견훤의 강압정책이 실패했던 역사가 있다. 과거 보수정권에서도 이러한 현실 인식이 있었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추진하면서 노태우 대통령은 “대결을 지속하면서 통일을 말할 수는 없다”라고 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냉정한 현실 인식에 바탕을 둔 안보정책 수립과 실행 전략이다.
정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