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업계 전반적 매출 감소…회계법인 M&A 열기 서서히 확산
중소회계법인 ‘상장회사 감사인등록’ 유지 부담
금융당국 ‘회계법인 등록 자진 철회’ 방안 검토
합병한 보현회계법인 ‘등록 철회’ 첫 사례될 듯
3월말 결산을 최근 마친 중견·중소회계법인들이 실적 부진으로 고민에 빠졌다. 회계감사 시장에서 벌어진 출혈 경쟁으로 감사보수가 전반적으로 낮아지면서 매출이 5~15% 이상 줄었기 때문이다.
올해 최악의 경영난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회계법인간 인수·합병(M&A)이 서서히 확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23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소속 회계사가 100명 미만인 A회계법인은 중견회계법인들을 상대로 합병 여부를 타진하고 있다. 지난해 적자를 기록했고 올해도 경영실적이 부진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내부적으로 구조조정이 필요해졌다. 상장회사를 감사할 수 있는 회계법인으로 금융당국에 등록(감사인등록제도)됐지만 품질관리에 투입되는 비용으로 인해 조직을 분리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상장회사 감사를 희망하는 회계사들을 분리해 이들 조직은 중견회계법인과 합병하고, A회계법인은 상장회사를 감사할 수 있는 ‘등록회계법인 라이선스’ 반납을 추진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상장회사에 대한 주기적 지정(금융당국이 기업의 감사인을 지정)이 전체적으로 줄어들고 대형 회계법인을 중심으로 지정 감사를 받는 기업이 늘면서 중소회계법인들이 등록회계법인을 유지해야 할 장점이 점차 줄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당국이 등록회계법인에 대한 감사품질 향상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품질관리를 위해 투입해야 할 비용의 증가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달 1일 BDO성현회계법인은 보현회계법인과 합병했다. 중견회계법인인 성현이 보현의 일부 조직을 흡수한 것이다. 성현은 1일 사원총회를 열고 보현의 회계감사부문 합병을 승인했다. 3월말 기준 합병 회계법인의 직원수는 340명, 공인회계사수 230여명이다.
등록회계법인 요건(회계사 40명)을 간신히 넘겼던 보현은 소속 회계사들이 대거 성현으로 옮기면서 요건에 미달하게 됐다.
금융당국은 보현에 대한 등록 자진 철회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법적으로는 등록취소를 하는 게 맞지만 등록취소는 제재에 해당하는 패널티 부과여서, 보현과 같이 M&A에 따른 조직 축소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다만 현재 자진 철회에 대한 법적 절차가 따로 마련돼 있지 않아 금융당국이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등록취소 처분 자체를 하지 않고 일단 철회 형식으로 법을 조금 확장 해석해서 라이선스를 반납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이달 중에 보현의 자진 철회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아 등록회계법인 중에서 첫 사례로 기록될 예정이다.
앞으로 회계법인간 M&A가 늘어날 경우 보현과 같은 사례가 많이 나올 수 있다. 회계법인의 한 대표회계사는 “소속 회계사가 100명 미만인 중소회계법인들은 매출 감소에 따른 M&A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점차 한계에 몰리고 있다”며 “품질관리에 투입해야 할 비용은 점차 늘어나는데 매출이 줄면 회계사들의 보수가 감소할 수밖에 없고, 내부적으로 갈등의 소지가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융당국은 향후 등록회계법인에 대한 품질관리 감리를 더욱 강화할 예정이다. 따라서 이번과 같은 자진 철회뿐만 아니라 감사품질 미달로 등록취소가 발생하는 사례가 나올 수 있다.
금감원은 등록회계법인 전체에 대해 2022년 하반기부터 품질관리 감리를 실시했고 올해 상반기에 마무리가 될 예정이다. 등록회계법인 상당수가 ‘상장법인 감사인등록요건’ 위반으로 제재를 받았다. 시정조치와 ‘감사인 지정점수’ 감점 조치 등의 제재는 회계법인 경영에 영향을 주고 있다. 지정점수가 깎일 경우 금융당국으로부터 지정받는 감사대상 상장법인이 줄어들기 때문에 매출 감소로 이어진다. ‘매출감소 → 품질관리 투입 비용 축소 → 품질관리 제재 → 지정점수 감점 → 매출감소’의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대형회계법인인 빅4를 제외한 등록회계법인들은 몸집을 불려서 매출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다. 중견회계법인 관계자는 “인수합병이 가능한 중소회계법인들과 언제든지 협상할 의향이 있다”며 “규모의 경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단지 감사인등록 요건 준수 여부에 그치지 않고 감사품질이 일정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회계법인들은 상장회사 감사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앞으로 등록취소가 되는 회계법인들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