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공약집도 정책토론도 실종된 대선

2025-05-26 13:00:01 게재

주요 대선후보들의 TV토론이 네거티브 난타전으로 점철됐다. 선거가 임박하며 지지율이 출렁이자 1차 토론보다 2차 토론에서 ‘정치본색’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사회갈등 극복과 통합, 연금·의료개혁, 기후위기 대응 방안 등을 검증하는 자리였지만 후보들은 ‘황제 헬기’ ‘소방관 갑질’ 등 이미 알려진 상대의 약점 들추기에 몰두했다.

후보들은 나름 토론전략이 먹혀들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네거티브만으로는 상대 지지율을 깎아내릴 수는 있어도 자신의 지지율을 끌어올리지 못한다는 것은 정치커뮤니케이션학계의 정설이다. 더구나 네거티브 선거캠페인은 유권자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넘어 혐오를 부추긴다.

네거티브 캠페인에 많이 노출된 유권자일수록 ‘이 후보나 저 후보나 마찬가지’라고 여겨 투표장으로 향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투표율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과거 미국 대선에서 네거티브 캠페인이 투표율을 평균 5%p 낮췄다는 ‘탈동원효과’가 그것이다.

유권자들은 23일 TV토론에서 우리 사회의 갈등해소와 지속가능성을 위해 시급한 현안인 연금개혁과 의료개혁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을 기대했다. 그러나 후보들은 연금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도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의정갈등이 장기화하면서 신규 의사 배출이 2년째 끊기고 의대 교육이 파행을 겪고 있는데도 의료대란 출구 전략과 의료체계 복구 방안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공약집도 못보고 투표장 가야 할 수도

답답하다 못해 ‘전파낭비’라는 생각에 부아가 치밀 정도다. 정치가 국민 삶, 민생을 걱정해야 정상임에도 대한민국에선 국민이 정치를 걱정한다. 이를 입증하듯 ‘대한국민 절반 이상이 장기적 울분 상태’라는 국민 정신건강 보고서가 나왔다.

서울대보건대학원이 지난달 성인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54.9%가 울분 고통이 지속되는 ‘장기적 울분 상태’라고 응답했다. 그 비율이 지난해 6월 조사(49.2%)보다 5.7%p 높아졌다. ‘정부의 비리나 잘못 은폐(85.5%)’ ‘정치와 정당의 부패(85.2%)’가 울분을 느끼게 하는 사안 1,2위에 올랐다. 비상계엄 및 대통령 탄핵 사태, 어수선한 대선 과정이 유권자 울분지수를 높인 것이다.

TV토론을 보노라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양대 정당이 ‘정책토론과 상호검증 기회를 차단하기 위해 여태 대선 공약집을 내놓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정책 공약집을 본격적으로 내기 시작한 2002년 16대 대선 이후 주요 정당들은 선거일 약 한 달 전, 늦어도 열흘 전에는 공약집을 공개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선거를 불과 여드레 앞둔 26일 오전까지도 공약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조기대선과 늦은 후보자 선정 등의 이유를 대지만 4월 4일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직후 유력 후보들이 출마 의사를 밝힌 만큼 공약집을 준비할 시간은 충분했다.

공약집 발표가 역대급으로 늦어지자 시민단체들의 공약 비교평가 작업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공약 이행과 실현 가능성을 가늠할 재원 규모와 조달 방안도 드러나지 않았다. 후보들이 지역을 돌며 여러 약속을 해댈 뿐 이를 공식화한 공약집이 없으니 후보자간 TV토론에서도 답변을 회피하거나 원론적 추상적 언사로 어물쩍 넘어갔다.

20대 대선의 절반에 못 미친 TV토론 시청률

탄핵에 따른 조기대선에 후보간 지지율 차이도 있지만 공약집 공개가 미뤄지며 ‘정책선거’가 아닌 네거티브 선거전으로 치닫자 TV토론 시청률도 맥을 못추고 있다. 18일 1차 토론의 지상파TV 3사 시청률은 14.9%로 20대 대선 첫 토론 시청률(39%)의 절반에 못 미쳤다. 23일 2차 토론 시청률은 12.6%로 1차 토론보다도 낮았다.

대선후보와 정당들은 TV토론 시청률이 왜 이리 낮은지에 대해서도 성찰해야 할 것이다. 민생과 직접 관련된 경제·사회 분야 토론 시청률이 이럴진데 국민이 평소 더 걱정하는 정치 분야를 다룰 27일 3차 토론 시청률은 어떨까.

정당들은 늦었지만 한시라도 빨리 ‘무엇을 얼마의 예산을 들여 언제 어떻게 하겠다’고 구체적으로 밝히는 공약집을 공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에 기반해 당당하게 토론하라. 그것이 국민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는 정치로 보답하는 길이자 한 표라도 더 얻는 선거운동이 될 것이다. 3차 TV토론마저 헐뜯기 난타전으로 국민 불쾌지수를 높이지 않기 바란다.

양재찬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