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집도 재원방안도 없는 ‘깜깜이 대선’
공약집, 사전투표 전후 발행 … 역대 가장 늦어
공약재원은 이재명 최소 210조, 김문수 150조
거대양당 대선후보들이 공약이행재원 규모와 재원확보 방안을 담은 ‘공약가계부’를 부실하게 제출하고 공약집을 사전투표일이나 직전에 내는 등 ‘깜깜이 대선’을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한국매니페스토본부는 지지율 3%를 넘는 3개 정당 대선후보의 질의서 답변을 공개했다. 후보들이 밝힌 공약가계부(대차대조표)를 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247개 국정공약에 ‘210조원 수준’의 세금이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지역공약 124개에 들어갈 재원에 대해서는 ‘추계 미확정’이라고 했다. 371개 공약을 이행하는 데 드는 전체 세금 규모는 내놓지 않은 셈이다.
구체적으로 매니페스토본부가 요구한 ‘10대 핵심공약의 재원’에 대해서도 제출하지 않았다. 매니페스토본부는 “다양한 세력과의 화학적 결합을 위한 정책적 수용과정에서 대선공약 정리가 늦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후보측은 재원조달방법으로는 2차 추경과 함께 재정개혁, 세입기반 확충, 세정혁신 등 두루뭉술하게 제시했다. 증세뿐만 아니라 감세방안도 ‘공란’으로 비워놔 재원마련의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국정공약 302개, 지역공약 107개를 내놓을 예정이라면서도 공약이행에 필요한 재원규모에 대한 답변서엔 ‘추계 중’이라고만 했다. 이후 “5년간 150조원” 들어갈 것이라는 예상치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10대 핵심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은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집권기간 중 감세규모로는 70조원으로 제시하면서 “매년 재량지출 10% 정도 수준(약 30조원) 구조조정으로 충당하겠다”고 했다. 앞선 정부에서 실패해온 ‘대규모 지출 구조조정’을 재원확보방안으로 제시한 셈이다.
매니페스토본부는 “계엄과 탄핵정국에서 대선을 선도적으로 준비할 수 없었고 지도부가 추진한 사상 초유의 후보교체 시도 등 대내외적인 이유 때문에 지금도 대선공약을 준비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했다.
이준석 후보는 국정공약과 지역공개 숫자와 재원추계나 재원마련 계획을 묻는 질문에 “매일 계속 업데이트 되는 중”이라고 답변하면서 중앙선관위에 제출한 ‘10대 공약서’를 첨부했다. 매니페스토본부는 “조직력 부족이라는 한계로 재정설계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매니페스토본부는 공약집 발매 일정도 물었다. 이재명 후보는 사전투표일인 29일에 공약집을 유권자에게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27일에 전자책(e-book)으로 공약집을 내놓고 사전투표 전날인 28일부터 유권자들에게 공개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이같은 거대양당 후보들의 늑장 공약 공개를 부실한 공약내용을 감추고 정책경쟁을 외면하려는 의도로 해석하고 있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거대양당 후보의 공약집 공개는 이미 역대 가장 늦은 시점을 넘겼다. 본격적으로 정책공약집을 내기 시작한 2002년 16대 대선 이후 가장 늦게 정책공약집을 낸 기록은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 2012년 18대 대선 때로 ‘9일 전’에 공약집을 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에 따른 2017년 19대 조기대선에서는 홍준표 후보가 22일 전에, 문재인 후보는 11일 전에 공약집을 냈다.
한국매니페스토본부는 “선심성 공약을 봇물 터지듯 쏟아내면서 역대 대선 중 가장 늦은 정책공약집과 부실하기 그지없는 대차대조표(공약가계부)를 제시하고 10대 공약 재원조차 추계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는 훼손된 민주주의 회복을 방해하는 중요 요소”라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