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사실상 건설사 전수평가 ‘구조조정 대상’ 선별

2025-05-27 13:00:03 게재

채권은행, 건설사 400여곳 신용위험평가

C·D 등급 나오면 부실징후기업 해당

PF부실과 맞물려 구조조정 본격화 예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셜(PF) 부실 등으로 건설사들의 연쇄 부도가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금융당국이 채권은행과 함께 건설사 400여곳에 대한 신용위험평가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정 규모 이상 건설사에 대한 사실상 전수 평가를 통해 구조조정 대상을 선별하고 있는 것이다.

27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감독원과 채권은행은 올해 상반기 진행하는 대기업 정기 신용위험평가와 별개로 건설회사에 대한 신용위험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신용위험평가는 기본평가를 통해 최근 3년 연속 영업활동 현금흐름이 마이너스인 기업, 최근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금융비용)이 1미만인 기업, 회계연도 기준 최근 자본총계가 마이너스인 기업 등 13개 기준 중 하나에 해당되면 세부평가로 넘어간다.

금감원은 시공능력평가 400위권 이내의 건설회사에 대해 기본평가와 상관없이 세부평가를 실시하도록 채권은행에 요청했다.

세부평가는 기업의 산업위험, 영업위험, 경영위험, 재무위험, 현금흐름 등 5개 부문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기준이 적용된다.

건설사들은 여기에 추가적인 기준이 포함됐다. 건설업종에 대해서는 △자기자본대비 PF대출·우발채무(연대보증, 채무인수, 자금보충 등 명칭불문 포함. 단 책임준공은 제외)위험 △공사계약잔액배율 △평균분양률 △사업장 비중 △현금성자산비율 △운전자금고정화율 등을 별도로 평가해야 한다. 금감원과 채권은행이 지난해 ‘기업신용위험 상시평가 운영협약’을 개정해 새롭게 추가한 내용이다.

◆금감원, 채권은행에 “평가 엄정” = 금감원은 지난달 채권은행들과 간담회를 열고 신용위험평가를 엄정하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채권은행들은 오랫동안 관계를 맺은 기업들에 대해 평가를 관대하게 하는 경향이 있어 그동안 실제 부실징후기업으로 분류되는 기업이 급격히 늘지 않았다.

금융당국은 매년 ‘기업신용위험 상시평가 운영협약’ 개정을 통해 은행의 재량적 평가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정성평가 기준을 줄이고 정량화하고 있다. 경기침체 여파로 부동산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PF 부실 확대로 건설사들의 위기가 확산되자, 금융당국이 지난해부터 건설업종에 대한 신용위험평가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세부평가 대상 기업은 지난해 크게 늘었다. 2023년 3579개에서 지난해 4028개로 450개 증가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세부평가 대상 기업이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은행들은 세부평가를 통해 기업들은 4단계로 분류한다. A등급(정상적인 영업이 가능한 기업) B등급(부실징후기업이 될 가능성이 큰 기업)은 구조조정 대상이 아니지만, C등급(부실징후기업에 해당하며 경영정상화 가능성이 높은 기업), D등급(부실징후기업에 해당하며 경영정상화 가능성이 낮은 기업)은 각각 ‘워크아웃’, ‘기업회생절차’ 대상이 다.

지난해 230개 기업이 구조조정 대상으로 평가됐다. 100개 기업은 C등급, 130개 기업은 D등급을 받았다. 대기업(신용공여 500억원 이상)은 C와 D등급이 각각 4개, 7개였고, 중소기업(신용공여 500억원 미만)은 각각 96개, 123개로 나타났다.

부실징후기업은 부동산업이 30개사로 가장 많았고 자동차(21개), 고무·플라스틱, 기계·장비(각 18개), 도매·중개(14개) 순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경기 침체와 PF 부실이 영향을 미친 것이다.

중소 건설사들은 올해 들어 줄줄이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고 있다. 시공능력평가 100위권 안팎의 건설사들은 58위 신동아건설을 시작으로 71위 삼부토건, 83위 대우조선해양건설 등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지난달에는 96위 대흥건설이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이밖에도 대전건설, 안강건설, 삼정기업, 이화공영, 벽산엔지니어링 등 100~200위권 건설사들이 잇따라 무너졌다.

부동산 시장 침체와 공사비 급등으로 재무건전성이 약한 건설사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1분기 기준 건설업 폐업 공고는 160건으로 2011년(164건) 이후 14년 만에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동성 위험, 건설업 전반으로 확산” = 채권은행들이 건설회사에 대한 신용위험평가를 엄정하게 진행할 경우 구조조정 대상으로 분류되는 기업들이 올해 크게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부동산PF 부실이 건설업계에 대한 본격적인 구조조정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부실징후기업으로 분류되지는 않았지만 일시적 금융애로를 겪는 기업들에 대해서는 금융지원이 이뤄진다. 금융당국은 영업력은 있으나 금융비용 상승으로 일시적 유동성 애로를 겪는 기업에 대해 신속금융지원, 프리워크아웃 등을 통해 위기극복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신속금융지원은 신용위험평가 B등급인 정상 중소기업에 대해 채권금융회사 공동으로 만기 연장, 신규 자금 등을 지원하고 기업은 자구계획을 이행하는 프로그램이다.

건설업에 대한 시장 전망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NICE신용평가는 지난 23일 주요산업 12개월 전망에서 건설업과 관련해 “건축착공과 기성 실적이 부진한 가운데 미분양 물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건설사의 매출 기반과 유동성 여건이 악화되고 있다”며 “지방 부동산에 대한 수요 여건이 개선되고 있지 않으며 이에 따라 저하된 건설업황이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유동성 대응력이 부족한 건설사의 신용도 위험이 상승할 것으로 우려했다. 주요 건설사들을 분석한 결과 이익창출력 약화와 미분양으로 현금흐름이 악화되며 유동성 확보를 위한 자산매각 및 계열지원 의존이 증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건설경기 침체 상황에서 유사한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판단했다.

NICE신용평가는 “주택시장 양극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이 확대되고 있다”며 “분양률 저하로 미수채권이 증가하면서, 유동성이 취약한 지방 중소 건설사를 중심으로 부도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며 “2025년에는 시공능력 상위 100위권 내 건설사도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등 유동성 위험이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라고 밝혔다.

구정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현재 4등급인 신용위험평가 체계에서 B등급을 2개로 세분화해 5등급 체계로 전환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기업신용위험평가 기본평가 기준을 변경해 현재 B등급에 속하는 기업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부실 상태가 심한 기업들을 구조조정 대상 기업으로 포섭하고, 이들 기업들에 대해서도 구조조정이 추진되도록 함으로써 조기 구조조정을 통한 경영정상화의 성공가능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경기·김성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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