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럽연합 무역협상 재점화
미국 50% 관세 유예
EU, 협상 시간 확보
트럼프 압박엔 신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연합(EU)에 대한 50% 고율 관세 부과를 한 달 넘게 유예하면서, 양측 간 무역 갈등이 일시 중단되고 협상 국면이 새롭게 열렸다. EU는 충돌을 피하고 협상 시간을 확보한 데 안도하면서도, 미국의 압박에 쉽게 굴복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 1일부터 EU 수입품에 대해 5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23일(현지시간) 밝혔지만,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의 요청을 받아들여 시점을 7월 9일로 미뤘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25일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통화에서 “좋은 합의에 도달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혔고, 트럼프도 이를 수용했다.
다음날인 26일 양측 고위 무역 수장들은 다시 통화했다.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무역·경제안보 집행위원은 미국 상무장관 하워드 러트닉, 무역대표부(USTR) 대표 제이미슨 그리어와 “건설적인 전화통화”를 했다고 밝혔다. 양측은 협상 가속화와 지속적인 연락에 합의했다.
EU는 산업재 상호 무관세를 기본으로, 액화천연가스(LNG), 대두, 무기, 일부 농산물 수입 확대를 제안했다. 이미 러시아산 가스 수입 중단 계획이 있는 만큼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는 현실적인 협상 카드다. 셰프초비치 위원은 “상호 무관세는 매우 매력적인 출발점”이라며 미국 측 수용을 촉구했다.
미국은 상품 무역 적자 해소를 명분으로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EU에 디지털세, 식품안전 기준, 부가가치세(VAT) 체계 등 비관세 장벽을 문제 삼고 있다. 이들 사안은 EU 법 체계상 회원국 권한이기 때문에 EU 집행위가 일방적으로 바꿀 수 없다.
유럽의회 무역위원회 의장 베른트 랑게는 “존재하지 않는 장벽까지 협상 대상으로 삼고 있다”며 “EU는 미국의 기준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EU가 협상을 유지하기 위해 추가 양보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호르몬 무첨가 미국산 소고기 수입 확대 등이 거론된다. 이는 최근 영국과 미국이 체결한 무역 협정과 유사한 방식이다. 그러나 EU는 “협상에는 열려 있으나, 굴복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 아일랜드 등 EU 주요국도 외교적 해결을 지지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관세를 최대한 낮추는 호혜적 무역을 원한다”고 말했다. 카타리나 라이헤 독일 경제장관은 “남은 6주를 집중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고, 마틴 헤이든 아일랜드 농업부 장관은 “백악관의 좌절은 오히려 EU 입장에 대한 간접적 인정”이라고 평가했다.
EU는 지난달부터 부과 예정이던 미국산 철강에 대한 보복 관세도 90일간 유예한 상태다. 이 조치는 향후 협상 진전에 따라 연장될 수도 있다. EU는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협상 주도권을 지키는 전략을 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 무역전쟁에서 큰 성과를 얻지 못한 상태다. 이번엔 EU를 직접 겨냥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EU는 즉각적 맞대응을 피하며, 외교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양측의 전략과 인내가 시험대에 올랐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