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가르드 “달러 흔들릴 때, 유로는 기회 잡아야”
ECB 총재 베를린서 연설 유로화 글로벌화 방안 제시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미국 달러의 지위 약화를 유로화에게는 “기회”라고 강조했다. 그는 26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허티스쿨 연설에서 “현재의 변화는 글로벌 유로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되고 있다”며 “이 기회는 스스로 쟁취해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로이터통신,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이날 연설에서 라가르드 총재는 세계 경제가 개방성과 다자 협력에서 보호주의와 경쟁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분석하면서 “이런 질서 속에서 달러의 지배력에도 불확실성이 생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세계 외화 보유액 중 달러 비중은 현재 약 58%로 1994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반면, 유로화는 약 20%에 머물고 있다. 라가르드는 “투자자들이 아직 유로화에 확신을 갖지 못해 대안으로 금을 선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로화의 국제적 위상 강화를 위한 세 가지 기반도 제시했다. 첫째는 유럽이 강력한 군사 동맹과 글로벌 무역 네트워크를 갖추는 지정학적 기반이다. 라가르드는 “투자자들은 경제뿐 아니라 안보 보장을 중시한다”며 “신뢰할 수 있는 안보 동맹이 유로화에 대한 신뢰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둘째는 경제적 기반이다. 그는 깊고 유동적인 자본 시장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자본시장 통합과 경제 개혁이 필수라고 했다. 셋째는 법적 기반이다. 유럽연합(EU)의 정치적 단결과 제도적 통합 없이는 유로화의 세계적 지위를 확보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유럽 기업들이 무역에서 유로화를 기본 청구 통화로 사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새로운 무역협정 체결, 국경 간 결제 시스템 강화, 유럽중앙은행과의 유동성 협정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유럽 내부에도 과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유로존의 자본시장은 여전히 파편화돼 있고, 투자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안전 자산’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는 “공공재는 공동 재정으로 조달되어야 한다”며 공동 채권 발행 확대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독일 등 일부 국가들은 자국 납세자의 부담 증가를 우려해 공동 차입에 반대하고 있다.
라가르드 총재는 최근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유럽은 건전한 통화와 독립된 중앙은행을 가진 안정적 지역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