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국민 노후소득 9천억원 손실위기
임대료 협상 결렬, 노동자 해고와 점포 폐점 속출 … “국민연금, 책임투자자로서 주주권 행사해야”
기업회생 절차(법정관리)가 진행 중인 홈플러스가 임대료 인하 협상이 결렬되면서 대규모 폐점 사태로 이어져 사실상 구조조정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게다가 국민연금이 투자한 홈플러스가 경영실패로 인해 국민의 노후자금인 9000억원을 날릴 위기에 봉착했다.
홈플러스 노동자와 입점업체들이 모인 ‘홈플러스 사태 해결 공동대책위원회’(대책위)는 27일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 서울북부지역본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9000억원 손실위기에 처한 국민연금은 책임있는 투자자로서 투자회수를 위한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하라”고 촉구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2015년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를 인수할 당시 6121억원을 투자했다. 이 가운데 상환전환우선주(RCPS)가 5826억원, 보통주가 295억원이었다. 현재까지 회수한 금액은 배당금 약 3000억원에 불과하고 남은 약 9000억원(원금+배당금)은 회수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대책위는 “국민연금이 채권회수 순위에서 후순위에 위치하기 때문에 국민의 소중한 노후자금은 모두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홈플러스는 점포를 임차해 영업 중인 매장(68곳) 중 폐점이 예정된 7곳을 제외한 61곳을 대상으로 임대료 조정 협상 중이다. 이 가운데 17개 점포에 최근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최악의 경우 현재 협상이 진행 중인 44개 매장도 계약해지될 수 있다.
최대주주인 MBK파트너스는 홈플러스 인수 후 ‘세일 앤드 리스백’(매각 후 재임대) 방식을 통해 점포를 운영했다. 공시에 따르면 임차료를 의미하는 회계상 유동 리스부채는 2023년 기준 4292억원이다.
홈플러스는 정상화를 위한 비용절감을 이유로 임대인들에게 임대료 35~50%를 인하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점포가 입주한 건물들의 경우, 임대수익을 기준으로 자산가치를 평가하는 상업용 부동산이라 임대료 감소가 투자손실로 이어질 수 있어 임대인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홈플러스측은 “최선을 다해 협상했지만 일부와는 기한 내 합의를 마무리하지 못해 부득이하게 법원의 승인을 받아 계약해지 통보를 하게 됐다”면서 “마지막까지 협상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설명에도 유통업계 등에서는 이대로 폐점 수순을 밟아 구조조정이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에선 이번 임대료 협상이 결렬된 17개 점포에 근무하는 정규직·용역·입점업체 등 인원이 약 2000~3000명에 달할 것으로 본다. 기업회생 과정에서 추가 폐점이 발생하면 대규모 인력감축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홈플러스가 임차계약 해지를 통보한 17개 점포 입점 소상공인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해당 점포에 입점해있는 매장 수는 대략 200~300곳으로 추산된다. 특히 홈플러스와 같은 대형마트에 입점해있는 매장은 특수상권으로 분류돼 임대차보호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강우철 마트노조 위원장은 “김병주 MBK 회장이 사재출연, 1조원 투자를 약속했지만 아직까지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점포 폐점과 사업부 분할매각 등 단기 수익만 추구하며 기업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국민연금은 MBK에 공개적으로 자구노력을 요구하고 투자회수를 위한 모든 주주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용건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도 “홈플러스 사태는 국민연금의 무모한 투자가 원인이며 국민연금은 즉시 MBK와 홈플러스의 자구노력을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며 “국세청과 검찰은 김병주 회장의 국내외 자산에 대한 압류와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영위원회 위원인 이태환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도 참석해 “국민연금은 대한민국 자본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기관”이라며 “지금처럼 MBK의 먹튀를 방조할 경우 이는 국민연금 스스로의 책임 회피”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연금이 적극 나서면 MBK의 자구노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