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수시 합격생 릴레이 인터뷰

나세현 서울시립대 물리학과 (충북고)

2025-05-28 09:41:44 게재

인류의 진정한 행복 위한 물리학자 꿈꿔요

중학교 시절, 세현씨의 꿈은 로봇기계공학자였다. 끊임없이 질문이 떠올랐고 깊게 파고들수록 물리학의 거대한 세계에 빠졌다. 비눗방울은 왜 알록달록할까? 어떤 물리학 원리로 터지는 걸까? 익숙한 현상조차 새롭게 보였고 본질을 파고드는 과정은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기초 물리학을 최종 진로로 결심한 이유다. 일편단심 물리학을 향한 그의 올곧은 여정을 들어봤다.

나세현 | 서울시립대 물리학과 (충북고)

나세현 | 서울시립대 물리학과 (충북고)

사진 이의종

수없이 질문 던지며 <미적분> <물리학Ⅰ> 통해 현상 오류 탐구

진로를 기계공학에서 기초 물리학으로 굳히게 된 계기는 가랑비에 옷 젖듯 접했던 책과 영상이었다. 그중 1학년 과학탐구 동아리에서 접한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다큐멘터리 <파이트 사이언스(Fight Science)>는 물리학에 빠져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쿵푸·가라테 같은 무술의 타격감, 속도, 무기 사용 동작을 고속 카메라, 센서,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정밀하게 측정하고 물리학적으로 분석해 무척 흥미로웠어요. 기초 학문을 깊이 있게 배우면 더 넓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는 걸 깨달았죠.”

어릴 적부터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데 흥미를 느꼈다는 세현씨. 그의 곁에는 아무리 엉뚱한 질문을 해도 함께 고민하고 답을 찾아주는 아버지가 있었다. 덕분에 책이나 영화를 볼 때도 단순한 감상에 그치지 않고 질문하는 습관이 생겼다.

1학년 <통합과학> 시간에는 영화 <마션>을 보고 ‘화성에서 습도와 온도를 맞춰 감자를 재배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하는 의문을 품었다. 스스로 답을 찾은 결과, 화성의 붉은 토양엔 철분이 다량 함유돼 있을 뿐 아니라 독성 화학 물질이 있어 정화 과정 없이는 식량으로 부적합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세현씨는 여기에 물리학을 접목한 가설을 세워 해결 방안까지 제시했다. 호기심을 바탕으로 현상의 오류와 모순 가능성을 살피는 일은 습관이 됐다.

“팝업 알림창처럼 수업 시간에도 연관 질문이 수시로 머릿속에 떠올랐어요. <미적분> 시간에 가속도를 배울 때 물리학의 ‘전자의 전이’가 떠오르면서 두 개념 사이에 모순은 없는지 의심했죠.”

세현씨는 이를 토대로 <물리학Ⅰ> 시간에 보어의 전자 모형에서 전자가 궤도 사이를 순간 이동하면서 속도가 무한대가 되는 오류를 지적하고, 고전 개념의 위치와 미시 영역에서 사용하는 확률적 위치의 차이에 대한 탐구를 진행했다.

3학년 동아리 탐구 활동 시간에는 비눗방울이 다양한 색을 띠는 이유와 비눗방울이 터지는 원인에 대한 궁금증을 바탕으로, 박막 간섭 현상을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비눗방울의 두께를 자동으로 측정할 수 있는 실험 방법을 고안하고, 이 변화를 농도별로 나누어서 그래프로 구현해냈다.

세현씨가 고등학교 3년 동안 만든 발명품도 여럿이다. 교실 문을 고정하기 위해 나무젓가락으로 문 거치대를 제작했다. 친구들의 피드백을 반영해 수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업그레이드했다. 페트병과 병뚜껑을 재활용해 대기압의 압력 차를 활용한 미니 청소기도 만들었다. 면적과 흡입력의 차이를 고려해 흡입구를 재설계하고, 필터의 문제점을 발견해 재료도 바꾸어봤다.

“물리학 지식을 바탕으로 직접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정말 짜릿했어요. 불편함을 하나씩 개선해가는 경험은 큰 의미가 있었죠.”

뭐든 뚝딱뚝딱 잘 만들어낸 덕분에 생긴 별명은 ‘에디슨’. 하지만 세현씨는 위대한 과학자보다 ‘물리학자 나세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싶다고 말한다.

물리학 도서 탐독하며 물리학의 역할 고민

세현씨의 학생부 곳곳에는 단연 물리학과 관련된 도서가 눈에 띈다. 그중에서도 기초 물리학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해준 책은 어려운 대학 물리 개념을 이야기로 쉽게 풀어낸 <물리 오디세이>였다.

“고등학교에서는 태양 흑체의 온도에 따른 색깔 변화만 배우는데, 이 책은 양자역학적 원리를 바탕으로 알기 쉽게 설명했더라고요. 이론만 배우고 그냥 넘어갔던 내용이 하나둘 겹쳐지며 뒤늦게 궁금증이 풀렸어요.”

기초 물리학의 연구 방향을 잡아준 책은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였다. 기술과 과학이 극도로 발전한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억압하는 세상을 간접 경험하면서 물리학의 역할과 방향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됐다. 원자폭탄을 만든 핵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전기를 다룬 <오펜하이머>는 인류의 궁극적인 행복과 안전을 지향하는 물리학자가 되고 싶다는 확신을 심어줬다.

“원자폭탄의 끔찍한 피해를 보고 자신의 연구를 후회하게 된 오펜하이머를 과연 위대한 물리학자라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더라고요. 저는 과학적 호기심과 지식의 진보만을 좇으며 물리학을 연구하고 싶지는 않아요.”

세현씨는 고등학교 시절의 탐구 활동을 대학 입학 후 도서관에서 찾은 물리학 전공 서적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에서는 공식을 암기해 정답을 찾았다면, 대학에서 배우는 물리는 이론을 깊이 이해하고 직접 증명하는 과정이 중심이라 훨씬 더 재미있어요.”

때문에 고등학교에서 탐구 활동을 할 때 대학 전공 서적을 미리 접해봤다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자료를 찾을 때 참고 문헌에 나온 대학 전공 서적을 살펴보거나, 국회 도서관이나 국립중앙도서관 혹은 중고 서적을 활용하는 방법도 추천했다.

일상과 밀접한 응집물질 물리학자가 꿈

세현씨는 수능 준비에 별도로 시간을 들이기보다는 학생부종합전형 지원을 생각하고 학교 내신에 집중했다. 하지만 수시를 목표로 하더라도 수능 최저 학력 기준과 정시 가능성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현씨는 응용과학보다 순수물리학에 집중해 네 곳은 물리학과, 두 곳은 물리교육과에 지원했다. 본격적으로 전공 과목을 배우게 될 2학년이 기대된다는 세현씨. 가장 관심이 많은 분야는 응집물질 물리학이다.

“핵 물리학이나 천체 물리학에 비해 고체와 액체를 다루는 응집물질 물리학은 우리의 일상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돼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반도체, 초전도체, 나노소재 등을 이론적으로 해석하고 실험·개발하는 응용 물리학이나 공학 기술 개발의 기초가 되죠. 졸업 후에는 대학원 진학도 염두에 두고 있어요. 앞으로 물리학으로 인류의 올바른 발전에 기여하고 싶어요.”

취재 이도연 리포터 ldy@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