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한화, 후순위채·신종자본증권 발행
신한라이프 1조원 몰려 … 증액키로
‘질낮은 자본’ 비판, 자본건전성 우려
롯데손해보험 콜옵션(조기상환) 사태로 보험업권 회사채 시장이 경색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신한라이프가 후순위채 흥행에 성공했다. 한화생명도 이사회에서 대규모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키로 했다. 업계에서는 자본시장이 경색되지 않았다면서 반기는 목소리다. 다만 ‘질낮은 자본’ ‘부채 돌려막기’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 27일신한라이프 후순위채 모집 수요 예측에서 1조2140억원이 몰렸다.
신한라이프는 3000억원을 모집할 계획을 세웠는데 수요는 4배가 넘는 수준이다. 이번에 발행할 채권의 금리는 3.4%로 예상된다. 신한라이프는 4배가 넘는 수요가 몰리자 5000억원으로 증액발행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신한라이프는 이번에 발행한 후순위채를 가지고 올 8월 3000억원의 신종자본증권 조기상환에 대응하기로 했다. 5년전 발행한 것으로 금리는 3.60%다. 증액발행이 이뤄질 경우에는 차환하고 남은 금액을 여유 자금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한화생명은 27일 임시이사회를 통해 10억달러(한화 1조3650억원) 규모의 해외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결정했다. 하지만 한화생명은 지난해에도 1조원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 바 있다. 한화생명은 “조달 자금 전액 K-ICS 비율(지급여력비율) 제고를 통한 자본건전성 강화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한라이프의 자기자본비율은 118%로 양호하지만 한화생명은 80%대에 불과하다.
동양생명도 지난달 5억달러 규모의 후순위 외화채권을 발행했다. 6.25%의 다소 높은 금리가 조건이었다. 세계 기관 및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자금 조달을 진행했다. 180개 투자자와 36억달러가 몰리기도 했다.
동양생명은 자본 확충 등을 위해 지난 3년간 해외 투자자 대상 논딜로드쇼(NDR)와 투자자 미팅 등을 펼쳐왔다. 투자설명회의 일종인 NDR은 자금 조달과 관련 없이 기업이 투자자들에게 경영정보를 제공하고 논의하는 활동을 말한다. 특히 투자자들과 장기적 신뢰를 쌓을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이 경색되는 이슈가 있었지만 옥석을 가리는 계기가 된 것 같다”며 “양호한 업체에 돈이 몰리면서 한계기업은 자금줄이 마를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권의 자본확충에 시장과 당국이 주목하는 것은 배경에 있다. 정부가 보험사의 자본건전성 제고를 위해 K-ICS 비율을 높이도록 했다. 언제든 계약자가 보험금을 청구하고 빠르게 지급할 수 있도록 보험사 곳간을 넉넉히 해두라는 취지다.
제도 변경에 따라 보험사들이 자본확충에 나섰는데 유상증자의 경우 시간과 비용, 절차 등의 문제가 생겼다. 가뜩이나 낮은 배당을 보이는 한국 시장에서 그것도 보험업 특성상 주주를 설득해 증자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때 보험사들이 주목한 게 후순위채와 신종자본증권이다.
보험사들이 발행한 후순위채와 신종자본증권은 보완자본으로 인정된다. 외견으로는 자본 확충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부채다. 증자보다 손쉽기 때문에 후순위채와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는데 집중했다.
지난해 말 국내 금융회사의 자본성증권 발행 잔액은 98조800억원 규모였다. 이중 보험업권이 21조4000억원에 달한다. 2025년 조기상환할 물량은 1조2000억원 가량된다.
올 1분기 보험업권 자본성증권 발행금액만 4조7000억원에 달한다.
보험사들의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늘리면서 자기자본에서 신종자본증권 비중도 늘었다.
2024년 말을 기준으로 보험사들의 자기자본 중 신종자본증권 비중은 36%대에 달한다. 자본잠식상태인 KDB생명의 경우 391%에 달했다. 이외에도 IM라이프생명보험(34%) 하나생명보험(31%)로 가장 높았다. 금융지주 계열이 아닌 교보생명(30%)과 흥국화재(27%) 도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후순위채나 신종자본증권 발행은 자기자본 감소, 재무건전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보험사가 곳간을 채운 자금은 고객들에게 지급할 보험금이다. 불확실성이 증대된 상황에서 대형 사고나 경기침체 등 예상보다 많은 보험금을 지급하는 상황이 발생하면보험사들은 휘청이게 된다. 후순위채나 신종자본증권은 일시처방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보험사 체력을 키울 필요가 있단 이야기다.
정부는 증자를 유도했지만 보험사들은 손쉬운 방법을 통했다. 당국에서는 “본래 취지와 다른 결과를 낳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금융당국은 결국 K-ICS 비율을 150%에서 130%로 낮추기로 했다. 지난해 채권 발행에 나선 보험사들은 허탈한 모습이다.
한편 신한라이프와 한화생명의 K-ICS 비율은 각각 188%, 155%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