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국어 문법을 공부해야 할 때
학력고사가 끝나고 수학능력시험의 시대가 되면서 한순간 기구한 운명을 맞은 것은 ‘국어 문법’이었다. ‘수학능력’ 곧 사고력을 평가해야 하는 시험에서 문법은 단순 암기 지식처럼 치부되었고, 수능 시험에 문법 문제가 나오지 않으니 대학 입시를 목표로 진행되는 학교 수업에서도 문법이 조금씩 배제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어휘·어법’이라는 이름으로 문법 관련 문제들이 하나둘씩 수능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때의 문제들은 주어진 <보기>의 내용을 선택지에 대입하여 풀 수 있는 꽤 재미있는 문제들이었다.
20년 역사의 수능 ‘언어영역’이 2014학년도 시험부터 ‘국어영역’으로 바뀌며, 국어 문법은 전체 45문항 중 5문항 출제로 위상이 변화되었다. 수능이 A형(이과)과 B형(문과)으로 나뉘어 문과는 문법 6문항을 풀어야 하는 시기도 잠시 있었고, 현재처럼 문법이 ‘언어와 매체’라는 과목에 포함되어 수능에서 선택할 수 있는 과목으로 변경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문법은 10여 년의 세월 동안 수능과 모의고사에서는 정말 다양한 유형과 난이도의 문제들로 출제되었고, 결국은 점점 많은 문법 지식이 필요한 문제로 변화되어 왔다.
그리고 지난 4월, 선택과목이 폐지된 2028학년도 수능 예시 문항이 발표되었다. 이제 ‘화법과 언어’라는 과목에 포함된 문법의 수능 예시 문항을 살펴본 느낌은 놀람과 우려 그 자체였다. 그렇지 않아도 많은 개념 학습을 요구하던 최근 문제에서 한 단계 더 나간 문제 유형이었다. 문제를 풀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지문이나 <보기>의 형태로 어느 정도 제시하던 현행 문법 문항과는 무척 다른 유형이었다. 또 문제 하나에 문법의 여러 영역, 즉 형태소, 단어의 품사, 문장의 짜임 등이 복합되어 있었고, 이에 대한 문법 지식이 머릿속에 모두 정리되어 있어야 선택지의 가부를 판단할 수 있는 문제였다.
평소 국어 문법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던 필자로서도 당황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개별 범주에 대한 이해도 벅찬 학생들에게 많은 개념이 융합된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통합이란 아름다우면서도 참 쉽지 않은 것이라는 점을 다시 느꼈다. 그러나 누군가는 적응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지금은 문법을 공부해야 할 때이다.
산본 이석호국어학원 이석호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