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30년 최대 성과는 ‘참여와 분권’
제도변화 토대, 주민참여 기회 확대
낮은 체감율·지역 불균형 극복 과제
1995년 민선 지방자치 부활 이후 30년 동안 한국의 지방자치는 제도적 토대를 마련했고, 많은 지역에서 ‘자치’와 ‘지역 맞춤 행정’의 가능성을 실현해 왔다. 하지만 동시에 주민 체감의 한계, 지역 간 격차, 자율성과 책임성의 불균형이라는 구조적 과제도 여전히 남아있다. 최근 행정안전부와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민선 지방자치 30년 평가’ 세미나에서 제시된 결과는 이 같은 양면을 잘 보여준다.
◆지방자치 제도 안정적 안착 = 지난 30년, 지방자치는 단순한 구호가 아닌 제도로 뿌리내렸다. 지방사무의 이양 비율은 1990년대 중반 10%대(13.38%)에서 현재 30%대(36.74%)를 넘었고, 재정분권과 자치입법권도 강화됐다. 지방정부의 자율성과 운영 권한이 과거보다 크게 확대된 것이다.
제도적 변화는 주민참여 구조에도 반영됐다. 주민자치회 주민참여예산제 주민조례발안제 등의 주민참여 제도가 마련됐다. 실제 전국 1295개(전체의 약 30%) 읍면동에서 주민자치회가 설치돼 운영되고 있고, 주민소환은 실효성이 낮다는 한계는 있지만 147차례 시도돼 11건이 주민소환투표에 붙여졌고, 이 가운데 2건은 소환에 성공하기도 했다.
이처럼 지난 30년간 지역 주민이 정책 결정 일부에 참여할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 임성빈 한국지방자치학회장은 지방자치 30년 성과에 대해 “주민의 정책 참여 기회가 대폭 확대됐고, 지역 특성에 맞는 정책을 개발할 수 있어 자연스럽게 주민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게 됐다”고 평가했다.
◆주민 체감·참여율 낮아 = 하지만 제도적 진전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온다. 낮은 주민 체감율과 참여, 지역 간 격차 등 구조적 한계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지방행정연구원이 지난 8월 전국 주민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62%가 “지방자치제도가 필요하다”고 답했지만, 실제 지방자치제의 ‘성과가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36%에 불과했다. 전문가 응답 비율(50%)이나 공무원 응답 비율(53%)보다 낮았다.
또 “지방의 정책 결정에 참여할 기회가 늘었다”고 답한 주민은 48%였지만, 실제 “주민자치회·주민제안 등 주민참여제도를 통해 정책·사업을 제안해본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14%에 그쳤다. 지방자치 참여 경험이 있는 주민이 10명 중 1~2명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재정·자율성 한계 여전 = 지방자치가 시행된 지난 30년 동안 분권과 사무이양이 이뤄졌지만 재정 자립성과 자율 운용 역량은 지역별로 큰 격차가 존재한다. 일부 지자체는 자체 재원을 확보해 비교적 안정적인 운영을 하지만, 재정 여건이 취약한 지역은 여전히 중앙 예산이나 보조금 의존도가 높아 ‘형식적 분권’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역 간 격차와 지속가능성도 문제로 지적된다. 인구 감소와 지역 쇠퇴, 지방소멸 우려가 커지는 시점에서 모든 지자체가 동일한 제도로 운영되는 현재 체계는 현실과 괴리돼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양한 지역 여건을 고려한 자율성과 권한 재설계, 그리고 권역 단위 협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같은 이유다.
주재복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민참여 확대, 입법 권한 강화 등 제도적 진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앙 의존 구조와 지역 간 불균형이 존재한다"며 "제도적 발전이 주민 삶의 직접적인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삶의 질’ 변화 이끌어야 = 전국적으로 저출산·고령화와 수도권 쏠림이 고착화된 인구구조 변화 때문에 지역 기반은 취약해졌다. 지방자치 30년의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질적 심화를 위한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우선 지방자치의 지속성과 자율성을 높이기 위해 중앙과 지방 관계의 근본적인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의 수직적·일방적 권한 배분 체계에서는 지역의 다양성과 변화 속도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분권 개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지방자치 제도의 근본적인 기틀을 다져야 질적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주민참여의 내실화도 핵심 과제 중 하나다. 주민자치회를 통한 풀뿌리 자치 실현, 참여예산제 확대를 통한 주민 재정주권 보장, 각종 견제 제도 강화를 통한 주민의 견제 강화 등은 모두 주민참여 확대가 전제되어야 주민참여의 효능감이 높아질 수 있다.
이 밖에도 조직·인사·입법·예산 등의 자율성 확대, 정책 결과의 투명성과 책임성 제고 등 지방자치의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심화’도 요구된다. 최근에는 단순 자치 단위가 아닌 권역 단위 광역 협력이나 광역 행정체제 개편 같은 제안도 제기되고 있다. 한 기초자치단체장은 “243개 지자체가 동일한 법령·체제로 운영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다”며 “권한 재배치와 제도 재설계를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한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