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들 비트코인 사재기 열풍
SW기업 스트래티지 따라 “우리도” … 2100만개 희소성과 ETF 기대감 겹쳐
지난주 비트코인 가격은 11만1965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4월 초 저점 대비 50% 넘게 급등한 수치다. 이에 자금을 동원한 상장사들의 비트코인 매입이 급증하면서 암호화폐를 보유한 미국의 상장기업 수는 4월 초 89곳에서 현재 113곳으로 늘었다. 이들이 보유한 비트코인 규모는 80만개로, 시가 환산 기준 약 880억달러(약 120조원)에 달한다고 28일(현지시간)자 파이낸셜타임스(FT)는 밝혔다.
이 열풍의 진원지는 단연 소프트웨어 기업 스트래티지다. 공동 창업자 마이클 세일러는 2020년부터 회사 자금을 비트코인에 집중 투자하며 기업을 사실상 ‘비트코인 ETF’로 변모시켰다. 현재 보유량은 58만개, 시가총액은 1010억달러로, 비트코인 보유분(640억달러)을 훌쩍 넘는다. 주가 희석 우려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이 스트래티지에 베팅하는 이유다.
투자자들은 스트래티지의 공격적인 매입이 비트코인 가격 상승의 ‘기관차’ 역할을 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디지털 자산운용사 TOBAM의 크리스토프 로리는 “이른바 비트코인에 편승하는 기업들의 매입은 기계적으로 수요를 자극하고 있으며, 이는 곧 가격 상승을 유도하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TOBAM은 현재 스트래티지 주식 390만달러어치를 보유 중이다.
이 같은 성공에 고무된 기업들이 속속 참전하고 있다. 28일 트럼프 대통령 가족이 운영하는 미디어 그룹은 25억달러를 조달해 비트코인을 매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법정통화 채택을 주도했던 잭 말러스는 ‘트웬티원 캐피털’을 설립해 소프트뱅크, 테더의 지원을 받으며 시장에 진입했다. 미국 상무장관 하워드 러트닉의 아들 브랜든 러트닉이 이끄는 캔터 에쿼티 파트너스도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스트라이브 자산운용은 트럼프 대통령의 아들들이 지분을 보유한 비트코인 채굴회사 ‘아메리칸 비트코인’과의 합병을 통해 증시 상장 및 자금조달 통로를 확보했다. 스트라이브는 15억달러를 조달해 1차 비트코인 매입에 나설 계획이다. 또한 나카모토 홀딩스는 오피오이드 치료 기업 킨들리MD와 합병해 ‘비트코인 기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들 기업의 주가도 요동치고 있다. 트웬티원 캐피털의 추정 기업가치는 144억달러로, 보유 예정인 4만2000개 비트코인 시가(약 47억달러)의 세 배를 넘는다. 스트라이브가 인수하는 에셋 엔터티스는 발표 이후 1240% 상승했고, 킨들리MD 주가는 540%, 그리폰 디지털 마이닝은 120% 급등했다.
비트코인의 공급량이 2100만 개로 제한돼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기업 매입 행렬은 ‘희소성’이라는 새로운 프리미엄까지 더하고 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비트코인을 가장 많이 보유한 상장사가 곧 시장의 주도권을 쥔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FT는 자산운용사 반에크(VanEck)의 패트릭 부시의 말을 인용해 “세일러의 전략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시장에서 쌓아온 높은 인지도와 신뢰 덕분”이라며 “비트코인에 연계된 증권 상품이 자동적으로 수요를 끌어내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그는 또 스트래티지가 전체 유통 비트코인의 2.7%만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새롭게 진입하는 기업들의 매입만으로는 비트코인 가격을 뒷받침하기 어렵다는 회의론도 제기됐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변수도 적지 않다. 트럼프 행정부의 변덕스러운 관세 정책과 연준의 금리 정책 불확실성, 주식시장의 고변동성은 신규 기업들의 비트코인 전략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플로우 트레이더스의 아론 찬은 “이러한 발행 구조를 자본시장이 얼마나 흡수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며 “시장 환경이 악화되면 투자자들은 새롭게 등장한 기업들의 전략에 냉정하게 반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