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 법적 공방 대법원까지 장기화 조짐

2025-05-30 13:00:03 게재

국제비상경제권한법의 권한 해석 입장차 뚜렷

관세카드 활용한 무역 협상에도 불확실성 커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부과한 관세에 대해 미국 연방 항소법원이 29일(현지시간) 일시적 효력 유지를 결정했다. 이는 전날 연방국제통상법원이 해당 관세를 위헌으로 판단하고 무효화한 지 하루 만에 뒤집힌 결과다. 항소법원의 조치로 트럼프 행정부는 항소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관세를 계속 부과할 수 있게 됐다.

전날 연방국제통상법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IEEPA를 근거로 중국, 캐나다, 멕시코 등에 부과한 10~25% 관세와 4월 2일 발표한 상호관세 조치를 위헌이라 판단했다. 법원은 IEEPA가 대통령에게 전 세계 대부분 국가에 무제한적 관세를 부과할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해당 조치는 즉시 중단될 예정이었으나, 항소법원이 이를 뒤집으며 논란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항소심 결정은 명확한 판시 없이 내려졌으며, 법원은 행정부 측 긴급 요청을 받아들여 판결 집행을 일시 중단하는 형태로 조치를 취했다. 행정부가 추가 소명을 준비할 시간을 확보해주기 위한 행정적 유예로 해석되지만 결과적으로는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정책을 지속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셈이다.

이번 사안의 핵심은 IEEPA의 해석이다. 이 법은 본래 외환 통제, 자산 동결, 수출입 제한 등 비상시 경제 제재를 목적으로 한 법률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광범위한 관세 부과 수단으로 사용해왔다. 이에 대해 법원은 대통령의 재량권 남용이라며 제동을 건 것이고, 항소심에서 그 해석을 놓고 법적 다툼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백악관은 항소심 결정을 환영하면서도 최종 결론은 대법원에서 내려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백악관 대변인은 “이번 사태는 사법 과잉의 대표적인 사례”라며 “헌법상 대통령의 권한을 침해한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또 “대법원이 미국의 법질서와 통상 전략의 일관성을 위해 반드시 개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판결은 정치와 외교, 무역 협상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은 현재 유럽연합(EU), 일본, 인도 등 10개국 이상과 무역 협상을 진행 중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높은 관세율을 협상 카드로 활용해 상대국의 양보를 유도해 왔다. 법원이 이 같은 관세를 위헌으로 판단할 경우 그 압박 전략은 실효성을 잃게 된다.

글로벌 무역 환경도 흔들리고 있다. 예일대 예산연구소는 관세 정책이 원안대로 무효화할 경우 미국의 실효 관세율이 약 18%에서 6~7% 수준으로 낮아질 것이라 예측했다. 이는 소비자 물가 안정에는 긍정적일 수 있으나, 미국 내 제조업과 수출 산업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월가는 이 판결을 두고 단기 상승 후 혼조세를 보였으며, 투자자들은 관세 정책의 방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IEEPA 외에도 무역확장법 232조, 무역법 301조, 긴급조항인 122조 등의 대체 법률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체 수단은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과 범위의 제약이 따른다. 특히 122조는 최대 150일 동안만 관세를 유지할 수 있어 정치적 활용도가 낮은 편이며, 232조는 이미 철강, 알루미늄 등에 적용 중이지만, 그 외 품목으로 확대하려면 새로운 절차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이번 법적 공방이 대법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보고 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이번 사건은 대통령의 통상 권한과 입법 해석의 한계를 가르는 중대한 시험대”라고 평가한 뒤 “각국 정부가 더 이상 관세 위협에 흔들리지 않게 되면, 미국의 협상 지렛대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대법원 판단이 내려지기 전까지, 미국의 관세 정책과 글로벌 무역 질서는 한동안 불확실성의 소용돌이 속에 놓일 것으로 보인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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