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탕 대선서 권영국 진보정당 존재감 부각
내란·범죄·혐오 대결서 진보정책 승부
“광장의 보이지 않는 목소리 대변”
21대 대선이 내란 책임론, 사법리스크, 혐오 발언 등으로 ‘최악의 대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가운데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의 정책승부가 눈에 띈다. 특히 원내 진보정당들이 모두 후보를 내지 않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면서 권 후보는 ‘유일한 진보정당 후보’가 됐다.

원외로 밀린 정의당이 노동세력과 힘을 합해 진보진영 유일의 대선 후보를 내놓을 때만 해도 ‘패배의 후과’에 대한 두려움과 진보의 목소리를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고민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세 차례의 TV토론을 통해 12.3 내란 이후 광장에서 외쳤던 이름 없는 이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보수화돼 결국 윤석열정부의 정책에 동조한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후보, 내란 세력과 동조하는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장애인 등에 대한 혐오 발언을 내놓은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를 적극 공략하며 선명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30일 민주노동당 핵심관계자는 “권영국 후보 출마로 진보정치의 공간이 사라지면 안 된다는 환기효과가 있었고 정치권에서 대변하지 못하고 있는 국민들의 삶과 불평등 문제를 진보정치가 제기하도록 기회를 주시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진보정당이 국민들 기대에 충분히 응하지 못했던 시간이 있었지만 권영국으로 대표되는 목소리 없는 사람들과 함께했던 사람들이 다시 전통적인 의미의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불러일으키는 데 역할을 했다고 본다”며 “진보정치를 제대로 한 번 해보라는 주문으로 본다”고 해석했다.
권 후보가 1차 TV토론을 마친 후 김 후보의 악수를 거절해 주목 받았다. 당시 권 후보는 “‘12.3 내란에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인식을 줄까봐 악수를 거절했다”고 했다. 2차 토론에서는 다수당인 민주당이 윤석열정부의 감세 정책 등에 결국 찬성해서 통과시킨 게 아니냐며 따지는 등 그동안 논란이 됐던 ‘민주당 2중대’라는 주홍글씨를 지우는 데도 적극 나섰다. 그러면서 3차 토론에서는 이준석 후보의 ‘혐오 정치’와 ‘갈라치기’를 지목하면 극단적 분열정치를 비판하기도 했다.
앞의 핵심관계자는 “3번의 토론회에서 이번 대선에서 전혀 쟁점이 만들어지고 있지 않고 목소리가 전달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을 호명하려 했다”며 “구로공단 노동자나 투잡 쓰리잡을 뛰어야 하는 쿠팡 알바 등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담으려 노력했다”고 했다. “진보정치가 어떤 위치에 서 있어야 하는지 명확하게 보여줬다”고도 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 교수는 “권영국 후보가 무엇보다도 진보정치의 존재감을 느끼게 해줬다는 게 중요했다”며 “지지 선언한 진보적인 지식인 등이 진보정치를 절박하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게 확인됐다”고 했다. 김 교수는 “노동계와 경선을 치러 선택받는 등 진보정치세력이 규합해 대선에 대표 주자를 내보냈고 진보정당에 대한 비판과 미움을 희석해 내는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현재 예상되는 여론조사 득표율은 1% 안팎이다. 민주노동당 안팎에서는 다음에도 TV토론을 나갈 수 있는 기준인 ‘3% 득표’를 목표로 삼고 있다. 이는 지난 20대 대선의 심상정 후보 득표율(2.37%)을 넘는 수치다.
김 교수는 “대선 이후가 중요하다”며 “규합한 진보진영세력으로 어떻게 지방선거를 준비하고 성과를 내느냐가 진보정치의 주요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