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증원’‘수사·기소 분리’…사법·검찰 대변화 예고

2025-06-04 13:00:17 게재

‘사법개혁 완수’ 공약 … ‘헌재 재판소원 제도’ 도입 관심

검찰 기소청 전환·수사절차법 추진 … 속도조절 전망도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임기를 시작하면서 법조계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검찰 수사와 재판을 받아온 이 대통령이 그동안 여러 차례 법원·검찰과 대립각을 세웠던 데다 선거 과정에서 대법관 증원과 검찰 수사·기소 분리 등 강도 높은 개혁을 공언해왔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에서 ‘내란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을 국정 목표로 제시하며 이를 위한 과제로 ‘사법개혁 완수’를 공약했다.

사법개혁은 지난달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면서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오른 바 있다. 대법원이 이례적으로 이 대통령 재판에 속도를 내면서 정치 중립성 논란을 낳았고 개혁 대상으로 지목된 것.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대법원 권한 약화를 위해 대법관 증원 법안을 잇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은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상고심에 대한 국민 신뢰도 제고 차원에서 대법관 증원을 공약하면서 증원 규모는 명시하지는 않았다. 현재 국회에는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법안이 계류돼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민주당은 이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 문제가 상당부분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고 법적 안정성을 유지하는 최고 법원으로서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현실적으로 30명이 모여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대법관을 증원하면 이 대통령 임기 중 절반 이상의 대법관을 임명하게 돼 사법부 구성이 치우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임기를 시작하면서 사법개혁이 본격화될지 주목된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달 1일 이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처리해 정치적 중립성 훼손 논란을 낳았다. 사진은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 대통령 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에 참석한 모습. 사진 연합뉴스

재판의 전 과정을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온라인재판 제도 도입, 국민참여재판 대상 재판 확대, 하급심 판결문 공개범위 확대 등도 사법부에 적지 않은 변화를 불러올 이 대통령의 공약들이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 제도가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은 재판 소원 제도 도입을 골자로 하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헌재도 이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재판 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 측면에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의 판단을 다시 받아볼 수 있게 된다. 다만 대법원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헌재의 법원 재판 관여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진통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개혁 완성’도 이 대통령의 핵심 공약 중 하나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월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유튜브에서 “(검찰이)기소하기 위해 수사하게 허용해선 안된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야 된다”며 “수사담당 기관과 공소 유지 기관을 분리해 수사기관끼리도 견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문재인정부에서도 추진했으나 미완에 그친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것이다.

문재인정부는 검·경수사권 조정과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등을 통해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를 부패·경제범죄로 제한했지만 윤석열정부에서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을 활용해 이를 되돌려놓은 바 있다.

검찰에 기소권과 수사권이 집중돼 있다보니 살아있는 권력은 봐주고, 정적 제거를 위해 보복성 기소를 남발하는 등 폐해가 심각하다는 게 이 대통령의 판단이다. 그는 대장동·백현동 개발 비리 의혹, 성남FC불법 후원금 의혹,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등 검찰의 전방위적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이같은 인식을 여러 차례 드러낸 바 있다. 지난달 대선 TV토론에서는 자신의 재판과 관련해 “윤석열정부의 조작 기소”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수사·기소 분리’는 이 대통령 공약집에 주요 공약으로 담겼다. 검찰이 가진 수사권을 분리해 ‘한국판 FBI(미국 연방수사국)’와 같은 중대범죄수사청을 신설하고, 검찰은 기소와 공소유지만 전담하는 기소청으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이 대통령은 또 수사과정에서 당사자들의 인권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수사절차법을 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수사절차법에는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과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등이 담길 예정이다.

이 대통령이 공약한 ‘검사 징계 파면 제도’도 검찰을 견제하기 위한 장치다. 현재 검사징계법에서 검사는 탄핵 또는 금고 이상 형을 선고받은 때가 아니면 해임·면직·정직·감봉·견책만 가능한데 법을 고쳐 다른 공무원들처럼 자체 징계만으로 파면 처분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검사가 해임되면 공직 재임용 및 변호사 등록이 3년간 제한되는데 비해 파면시에는 5년으로 기간이 늘어나는 등 불이익이 커진다.

이 대통령은 경력법조인 중에서만 검사를 선발하도록 법조일원화를 확대하겠다는 공약도 제시했다. 젊은 법조인을 법관으로 임명해 법원 안에서 경력을 쌓는 경력 법관 제도의 순혈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사법부에 도입됐던 법조일원화를 검찰에도 적용해 폐쇄적인 조직문화를 깨뜨리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검찰과 반대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위상은 크게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공약집에는 직접적인 공수처 관련 내용이 없지만 이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공수처를 대폭 강화할 생각”이라며 “지금 공수처 안에 검사가 너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공수처법상 공수처 검사 정원은 처·차장을 포함해 25명에 불과하다. 검찰 한 개 지청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또 공수처 검사는 최장 12년만 근무할 수 있는 등 신분이 불안정하고 유인책도 부족해 어렵게 인력을 충원해도 퇴직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정원마저도 제대로 채우지 못해왔다.

이에 따라 새정부에서는 공수처 정원을 늘리고 검사와 수사관의 안정적인 신분과 업무 연속성을 보장하는 방향의 법 개정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사법·검찰개혁을 둘러싼 논란이 많고 반발도 예상되는 만큼 이 대통령이 임기 초반부터 무리하게 추진하기보단 속도조절을 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기자간담회에서 “지금은 모든 에너지를 초기에 경제·민생 회복에 둬야 한다”며 “제도 개혁이나 사법·검찰개혁은 중요하지만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구본홍·김선일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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