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사실’에 기반한 정책을 기대한다

2025-06-05 13:00:03 게재

최근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 절반 이상이 장기적인 울분상태에 있으며, 10명 중 4명은 지난 1년간 건강에 영향을 줄 정도의 심각한 스트레스를 겪었다고 한다. 특히 소득 수준이 낮거나 사회적 기반이 불안정한 계층에서 이러한 정서적 고통은 더욱 심하게 나타났다.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는 저서 ‘미스빌리프(Misbelief)’에서 극심한 스트레스가 사람들을 이성보다 감정, 사실보다 음모, 데이터보다 ‘믿고 싶은 이야기’에 기대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를 ‘불신의 깔때기(funnel of mistrust)’라 부른다.

사회적 신뢰가 무너지고 공정성에 대한 믿음이 사라질수록사람들은 팩트보다는 서사(narrative) 중심의 사고로 전환하게 된다. 이성 대신 해석, 논리 대신 감정이 선택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정서적 기반 매우 불안정

이러한 신뢰붕괴의 대표 사례가 지난 감사원의 통계청 감사 결과였다. 만약 정부가 통계를 정책홍보의 도구로 사용했다면 이는 민주주의와 시장의 기반을 흔드는 심각한 문제다. 국민은 이제 정부 발표보다 유튜버의 예측이나 온라인 커뮤니티의 ‘썰’을 더 신뢰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데이터가 아니라 감정이 현실을 재구성하는 사회, 그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 불신은 가장 민감한 생활 영역인 부동산에서 특히 심각하게 드러난다. 주거는 국민의 삶과 직결된 기본권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분야가 되어버렸다. 국민 다수는 “지금 안 사면 영영 못 산다”는 두려움 속에서, 정확한 근거보다는 분위기와 조급함에 따라 움직인다.

최근 서울 일부 지역의 토지거래허가제 완화 발언, 선거철 규제완화 기대감 등은 시장에 불필요한 자극을 주었고 오히려 가격상승을 부추겼다. 제도의 본래 목적은 퇴색되고 ‘정치적 수사’가 시장의 신호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더욱이 사람들은 규제가 생기면 “이 지역은 핫하다”고 해석하고, 규제가 풀릴 것 같으면 “지금이 투자 적기”라며 움직인다. 정책이 아니라 기대가, 데이터가 아니라 ‘느낌’이 시장을 이끄는 것이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빚을 내어 부동산 시장에 진입하고, 심리적 불안이 실물시장을 자극하며, 가격 상승은 다시 그 불안을 정당화하는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을 만든다.

이 악순환의 끝은 부채증가, 소비위축, 자산격차의 확대다. 가장 취약한 청년층과 서민층이 가장 큰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이들은 정보 접근도 제한되고, 잘못된 의사결정을 반복할수록 미래의 선택 가능성마저 줄어든다. 그 누구보다 예측가능하고 일관된 정책, 믿을 수 있는 기준이 절실한 이유다.

새 정부가 회복해야 할 것은 ‘사실’과 ‘안정’

이제 새롭게 출범한 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사실의 복원’이다. 정부 통계는 국민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기준선이어야 하며 정책은 누구에게나 예측 가능해야 한다. “이번엔 또 무엇이 바뀔까”라는 불안을 넘어 “이번엔 믿을 수 있겠지”라는 신뢰를 구축하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

부동산은 단순한 자산이 아닌 국민의 일상과 미래를 구성하는 터전이다. 주거의 안정은 정서적 안정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합리적 의사결정의 토대가 된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정부는 더 많은 공약을 내거는 정부가 아니라, 실망을 덜 주는 정부다.

국민의 불안을 줄이는 정치는 결국 신뢰를 얻는 길과 겹친다. 새 정부에 바란다. 서사가 아닌 사실, 감정이 아닌 데이터, 정권이 아닌 국민 중심의 정책을 펼쳐 주길 바란다. 정치는 감정으로 할 수 있어도 정책은 신뢰 위에서만 지속될 수 있다. 신뢰는 통계에서 시작되고, 일관성에서 쌓이며, 공정에 대한 확신에서 완성된다.

유경원 상명대 교수 경제금융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