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공약 재점검해 신성장동력에 집중을

2025-06-05 13:00:04 게재

지난 6개월간 우리 사회를 옥죈 계엄과 탄핵의 터널에서 벗어났다. 불확실성 해소는 반가운 일이지만 구조적인 요인으로 인해 경제활력을 되찾기가 무척 어렵다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여건이 엄중한 만큼 새 대통령은 민생회복과 통상문제 등 발등의 불을 반드시 꺼야 한다. 아울러 신성장동력 확보와 경제체질 개선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한국경제는 현재 중증(重症)위기 국면이다. 외환위기 때보다 결코 못하지 않다. 외환위기가 일시적으로 발생한 유동성 위기였다면 지금은 성장엔진이 꺼져가는 구조적이고 만성적인 위기다. 최근 한국은행은 올해 우리 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를 0.8%로 대폭 낮췄다. 지난 1분기 성장률은 마이너스였다. 과거 경제 모범생이었던 흔적은 온데간데없다. 더 암울한 것은 잠재성장률의 지속적인 하락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2040년대 후반부터 마이너스 성장 시대로 진입한다고 한다.

구조적이고 만성적인 중증 위기 국면, 경제회복 불씨부터 살려야

이재명 대통령은 경제회복 불씨부터 살려야 한다. 내수부진의 골이 깊어진 상황에서 3분기부터 관세전쟁의 영향이 본격적으로 밀려들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 법원이 트럼프행정부의 상호관세 부과를 위헌이라고 판시했는데도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미국의 관세가 4일부터 50%로 올라가는 등 한동안 소강상태를 보이던 관세전쟁 파고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때문에 긴급수혈을 위한 제2차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필요하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이 대통령의 1호 행정명령으로 구성된 ‘비상경제대응 TF’도 4일 밤 열린 첫 회의에서 추경 편성 문제를 논의, 지난달 의결된 13조8000억원의 추경에 이어 2차 추경이 사실상 공식화됐다.

문제는 악화된 재정상태와 고공행진 중인 물가이다. 나라살림은 윤석열정부 3년 동안 줄곧 나빠졌다. 1990년부터 윤석열정부 이전까지 32년간 국세 수입이 준 것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9년 세계금융위기, 2013년 카드대란, 2020년 코로나사태 등 모두 경제위기 때였다.

그러나 윤석열정부 들어서는 이렇다 할 경제위기를 거치지 않았는데도 세수가 올해까지 3년 연속 크게 감소했다. 앞으로 재정상황이 개선되기도 어려운 상태다. 이 대통령이 약속한 대선공약이 무려 200조원을 넘는 등 재정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데다 첨단미래산업에 대한 지원도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표심을 잡기 위해 대선 공약을 남발한 측면이 있다면 이젠 선심성 정책들을 과감히 거둬들여야 한다.

재정은 지속가능성이 무척 중요하다. 적극적인 재정운용으로 부채가 발생하더라도 국내총생산이 늘어나 재정의 지속가능성이 유지된다면 문제 될 게 없다. 그렇지 않다면 증세를 해야 한다. 증세가 어렵다면 비과세 감면이라도 정비해야 한다. 과도한 국가채무는 국가신인도 하락과 미래세대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신용등급이 최근 강등된 것도 막대한 재정적자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단기적으로는 추경 등을 통한 재정지원이 적절할 수 있겠지만 지속가능한 재정운용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언도 이래서 나왔다.

대규모 재정 살포는 가뜩이나 높아진 물가를 더욱 자극할 것이다. 당장 이달 말 수도권 지하철 요금이 오르고 가스 철도 등 각종 공공요금 인상이 거론되고 있다. 물가가 오르면 실질소득 감소로 서민 피해가 가중된다. 한국경제인협회 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6명은 최우선 민생 과제로 ‘물가안정’을 꼽았다. 그런 의미에서 2차 추경은 신성장동력 육성과 취약계층 핀셋지원 등에 초점을 맞춰 균형감 있게 편성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대미 관세협상, 새 정부 통상외교의 시험대 될 것

대외적으로는 미국과의 관세협상이 주요 이슈다. 관세부터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 문제까지 풀어내야 한다. 미국측은 그동안의 협상에서 30개월 이상된 쇠고기 수입, 구글이 신청한 고정밀 지도 반출, 유전자변형생물체(LMO) 수입규제 완화 등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모두가 국민 여론을 악화시킬 수 있는 민감한 이슈들이다.

관세는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하지만 미국이 일방적으로 책정한 관세를 인하하지 못한다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관계와 조선, 방위산업을 중심으로 한 양국 간 협력 중요성 등을 내세워 관세 인하 및 면제를 관철시켜야 한다. 한국의 특수성을 얼마나 인정받을 수 있을지가 새 정부 통상외교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박현채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