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체 채권 소각’ 6번째 배드뱅크 가시화…채무탕감 규모 클 듯
코로나대출 9월말 47조원 만기도래
금융권 부실채권 급격히 증가 추세
정부 재정 투입, 금융회사 출연 가능
금융당국이 본격적으로 금융권 전체의 연체 채권 규모 파악에 나서면서 연체 채권 소각을 위한 6번째 배드뱅크 설립이 가사화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토론 당시 “채무조정 정도를 넘어서서 일정 정도는 정책자금 대출 부분은 상당 정도 탕감을 해주는 게 필요하지 않냐”고 밝혔고, 공약으로 코로나 대출 종합대책과 장기소액연체채권 소각 등을 위한 배드뱅크 설치를 제시했다.
경기침체 여파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금융부담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어 채무탕감 규모가 상당히 커질 가능성이 있다.
금융감독원은 12일 금융회사 전체에 현재 보유 중인 연체 채권 현황을 정리해 보고하도록 했다.
금융회사 연체채권의 소멸시효는 5년이지만 연장되기 때문에 10년 이상 장기연체 채권을 비롯해 연체가 지속된 기간별 채권 현황을 전부 파악하고 있다. 어느 정도 규모로 빚탕감을 할 수 있을지 대상 범위와 기준을 정하기 위한 기초 작업이다. 대부업체에 대해서도 상위 30곳이 보유한 장단기 연체 채권을 확인 중이어서 규모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감원은 이달 20일까지 자료를 제출받아 전체적인 연체 규모를 산정해 금융위원회에 보고할 예정이다.

◆부실채권 인수 규모 얼마나 될까 = 코로나 이후 은행권의 지원(신규대출, 만기연장, 원금상환 유예) 규모는 약 265조원에 달한다. 코로나로 가장 충격을 받은 취약업종에 대한 금융권 대출 규모는 2018년 423조원에서 지난해말 603조원으로 180조원 가량 늘었다. 그동안 만기를 연장해오다가 오는 9월말 만기가 도래하는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코로나 대출금은 44조9000억원이다. 여기에 원리금 상환이 유예된 대출 2조5000억원을 합치면 총 47조4000억원이다. 현재 파악 중인 연체 채권에 더해 신규 발생 연체 채권이 급격히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1997년 외환위기가 커지면서 부실채권정리기금을 조성해 111조원을 인수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설립한 첫 배드뱅크였다. 이후 2004년 카드대란 당시 한마음금융희망모아기금을 조성해 16조원을 인수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구조조정기금, 2013년 가계부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국민행복기금을 조성했다. 코로나 사태를 맞아 2019년 새출발기금을 조성한 것이 다섯 번째 ‘배드뱅크’로 볼 수 있다. 새출발기금은 4월말 기준 채무조정 신청액이 20조3173억원이며, 이중 채무조정 대상이 된 금액은 약 5조7997억원이다. 매입형 채무조정의 평균 원금 감면율은 약 70%다.
◆재원조달은 어떻게 = 배드뱅크는 금융회사에서 발생한 부실자산을 인수해 정리·회수하는 역할을 전담한다. 그동안 캠코가 별도의 기금을 마련해 배드뱅크 역할을 수행했다.
이번에도 캠코에 배드뱅크를 설치할 가능성이 있지만 별도의 기구를 설립할 수도 있다.
금융위는 이달 5일 개인 채권 양수 자격을 비영리법인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개인금융 채권의 관리 및 개인금융 채무자의 보호에 관한 감독규정’ 변경을 예고했다. 현재 개인 채권 양수는 금융회사와 캠코로 제한돼 있다. 금융위는 배드뱅크 설립을 염두에 두고 규정을 변경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비영리법인 설립의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게 된 셈이다.
문제는 부실채권을 인수해 정리해야 할 배드뱅크의 설립 재원이다. 정부 재정을 투입하는 것 뿐만 아니라 금융권으로부터 출연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과거 부실채권정리기금이나 구조조정기금의 재원 조성을 보면 금융회사 출연금, 캠코 전입금, 정부 출연금, 한국은행 등으로부터 차입금 등이다.
이번 배드뱅크의 경우 채무탕감 규모가 클수록 금융회사 출연금, 특히 은행권에 대한 대규모 출연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2023년 당시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캠코법 개정을 통한 배드뱅크 설립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부동산PF 정리 등 금융권의 부실자산 및 채권 인수 정리를 위한 안정도약기금 설치를 내용으로 한 법안이다. 당시 금융위는 재원 조달과 관련해 “금융기관 등에 대한 지속적 출연을 요청할 경우 금융회사 등으로부터 강한 반발이 발생하게 돼 재원조달 과정에서 재정 부담의 증가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고, 정부 출연·기금채 발행 등을 통해 대규모 재원을 지속적으로 조달하는 것은 현 재정여건을 감안할 때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