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D 회계투명성 41위→60위로…기업지배구조 순위는 66위
기업 밸류업 노력에도 국가경쟁력 순위 바닥, 증시에 악영향
“회계기본법 제정해 국제사회 평가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돼야”
금감원 회계감독 수장, 임원 아닌 직원 … 정부조직개편시 고려 필요
윤석열정부에서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해 기업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지만 한국의 회계투명성과 기업지배구조의 국가경쟁력 순위는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이재명정부에서 ‘코스피 5000시대’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근본적인 제도 개선을 통해 국내외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지 않는 한 자본시장의 중장기적인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17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2025년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의 회계투명성 순위는 69개국 중 60위로 전년(41위) 대비 19단계 하락했다. 이사회의 유효성을 대표하는 기업지배구조(기업이사회 항목) 순위는 66위를 기록했다. ‘경영진 신뢰도’ 역시 66위로 사실상 바닥에 가까웠다. 기업효율성은 44위, 경영활동은 55위로 기업경영과 관련된 전반적인 지표가 크게 하락했다.
특히 국내 기업의 회계투명성에 대한 경쟁력 하락은 기업들이 공시하는 경영 지표들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이어서 자본시장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는 중요한 문제다.

◆회계개혁 이전으로 회귀 = 2015년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를 계기로 회계투명성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높아졌다. 2016년 IMD 평가에서 회계투명성은 61개국 중 61위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2017년은 63개국 중 63위, 2018년 63개국 중 62위, 2019년 63개국 중 61위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회계개혁을 통해 외부감사법 전면 개정으로 탄생한 신외부감사법이 시행되면서 2020년 46위, 2021년 37위로 상승했다. 2022년 대규모 횡령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53위로 일시적 하락을 맞기는 했지만 2023년 47위, 2024년 41위로 다시 올라갔다.
회계업계에서는 회계개혁의 핵심인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본격 시행되면서 회계투명성이 높아진 것으로 보고 있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는 기업이 자율적으로 외부감사인을 6년간 선임했다면 이후 3년은 금융당국이 외부감사인을 지정하는 제도다. 기업과 회계법인의 유착을 막고 외부감사인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한 취지다.
IMD의 회계분야 평가는 해당 국가 기업의 중간관리자를 대상으로 ‘감사·회계업무가 적절히 실시되고 있는지’를 묻는 단일설문(6점 척도)에 의해 평가된다. 기업 중간관리자들의 인식 수준에 따라 순위가 결정된다는 의미다. 회계개혁을 통해 기업 내부에서도 강도 높은 외부감사가 실시되고 있다는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다.
회계업계는 올해 회계투명성 순위가 급락한 이유와 관련해 감사계약을 놓고 회계법인들이 벌인 덤핑경쟁 등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상당수 대기업들이 주기적 지정 이후 외부감사인을 자유 선임하는 시점에 되면서 대형 회계법인들을 중심으로 감사계약을 따내기 위해 출혈경쟁을 감수하며 저가수주에 나섰고 그 여파로 올해 초 감사시장이 혼탁해졌다.
한국공인회계사회는 “회계개혁 이전의 덤핑경쟁이 다시 촉발됐고, 여러 회계부정 사건이 끊이지 않고 지속됨에 따라 (회계투명성이) 과거 수준으로 회귀할 우려를 감안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덤핑경쟁으로 지정감사를 받을 때보다 감사보수가 30~50% 가까이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기업 관계자들도 제대로 된 회계감사가 이뤄질 수 있는지 의심하지 않았겠느냐”며 “부실감사에 대한 우려가 낮은 평가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공인회계사회는 “다시 한번 회계개혁의 본래 취지를 상기해 기업·회계업계·금융당국은 합심해서 회계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회계개혁의 올바른 방향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대통령 공약사항에 포함된 ‘회계기본법’은 국가 전반에 체계적이고 일관된 회계정책의 수립·집행이 이뤄질 수 있도록 영리·비영리부문을 아우르는 기초법으로, 이는 회계의 중요성을 바라보는 인식 개선 기대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평가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회계감독조직 위상 제고해야 = 이와함께 국정기획위원회가 신속한 정부조직 개편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가운데 회계감독조직의 위상을 높일 필요성이 있다.
기업회계를 총괄 감독하는 정부 조직은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 산하에 회계제도팀이 전부다.
회계감독을 집행하는 조직은 금융감독원 회계전문심의위원이 맡고 있다. 하지만 회계전문심의위원의 지위는 금감원 임원(부원장보)이 아닌 직원이다. 당초 금감원 임원 신분이었지만 감사원이 2023년 금감원 집행 간부의 정원 초과 문제를 지적하면서 선임 국장급으로 낮아졌다.
회계전문심의위원이 당연직으로 참여하는 각종 위원회(감리위원회, 회계제도심의위원회 등)는 자격 요건이 고위공무원단·임원으로 규정돼 있어 직원 신분은 형평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회계 인프라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회계투명성·신뢰성 제고를 위한 회계개혁 추진 과정에서 집행기구의 전담임원 부재는 우리나라의 회계개혁 의지가 후퇴한 것처럼 비춰질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국회에는 회계전문심의위원의 지위를 부원장보로 격상하는 내용의 ‘금융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국회 정무위는 검토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경우 회계감독기구가 별도로 독립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총괄적인 회계전문가의 지위가 낮아지는 것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서 임원 정원을 확대해 전문심의위원을 회계전문 부원장보로 격상할 필요성이 인정되는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재명정부가 회계기본법 추진과 함께 독립적인 회계감독기구 설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하고 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