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 경기회복 마중물 될까…환영·한계지적 엇갈린 반응
벤처·저소득층·지방건설업계·증권시장 등은 “가뭄의 단비” 기대감
부채탕감엔 ‘도덕적 해이’ 우려 … 중장기 성장·세수마련대책 촉구
30조원대 규모의 이재명정부 첫 추가경정예산(추경) 정부안이 확정되자 환영과 우려의 목소리가 엇갈렸다.
장기 불황에 시달리던 영세 소상공인과 빚 많은 저소득층은 일단 ‘가뭄의 단비’란 반응이다. AI 등 신산업 분야에 1조원 규모 투자를 하겠다는 방침에 대해 벤처와 관련 업계는 기대감이 크다. 추경안의 초점이 경기진작과 소비여력 보강에 초점을 맞추면서 증권시장도 활기를 띠고 있다. 내수 활성화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침체한 건설경기 회복을 위해 2조7000억원을 투입하겠다는 방침에 대해서도 지방건설시장을 중심으로 환영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다만 저소득층 부채탕감에 대해서는 ‘도덕적 해이’가 없도록 엄정하고 공정한 집행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또 추경재원 마련을 위해 약 20조원의 국채발행이 뒤따르는 만큼 중장기적 세수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우려도 나왔다. 추경 자체가 ‘응급처방’이므로 장기적으로 경기회복을 이끌 신산업 성장기반 마련과 구조개혁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방건설업계 “환영… 좀 더” = 추경안에는 침체한 건설경기 회복을 위해 2조7000억원을 투입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지원과 지방 미분양 매입 등의 사업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했다.
우선 국비 3000억원을 출자해 1조원 규모의 ‘PF 선진화 마중물 지원을 위한 앵커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를 조성한다. 우수한 개발 사업장에 앵커리츠가 토지매입(통상 1년 만기 브릿지론)시 총사업비의 10~20% 투자, 인허가 이후 본PF대출 시 회수하는 방식이다. 또 2000억 원을 투입해 중소 건설사와 2금융권 사업장에 특화된 전용 PF대출보증을 신설한다.
준공 전 미분양 물량에 대한 안심환매 제도도 시행한다. 환매조건부 매입은 분양가의 50% 수준으로 매입한 뒤, 준공 이후 매입금액과 이자를 더한 금액으로 환매하는 방식이다.
다만 지원규모가 이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대한건설협회는 SOC 예산으로 올해 3조원 규모 2차 추경 편성을 요청한 바 있다.
◆벤처업계 활로 열릴까 = 정부가 약 1조원대 벤처·인공지능(AI) 등 신산업분야 투자확대를 위한 추경안을 실행하기로 하자 벤처 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벤처기업협회는 “적극 환영한다. 어려운 재정여건 속에서도 벤처기업 육성과 벤처투자 활성화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담겼다”고 밝혔다. 정부 추경안에는 유망 벤처·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예산으로 1조3000억원을 포함했다.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모태펀드 출자 등에 5850억원을 배정했다. AI 모태펀드 출자는 기존 6000억원에서 1조1000억 원, 문화·콘텐츠 모태펀드 출자는 2950억원에서 3800억원으로 각각 늘어난다. 또 초기 창업 기업을 대상으로 한 저금리 정책자금도 추가로 공급한다.
신산업 분야 초기기업의 안정적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단계별 창업패키지도 확대한다. 성장 단계별 사업화 자금과 창업 프로그램 제공에 420억원을 추가 반영했다. 대상 사업자 수는 1611개에서 2015개로 늘어난다. 또 AI·신재생 투자에는 3000억원을 추가 투입한다. AI 실증과 기술 도입을 위한 6대 분야의 AI 전환(AX) 지원에 1715억원을 추가해 사업비를 1조원 수준으로 늘렸다.
협회 측은 “모태펀드 증액과 정책자금 추가 공급은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벤처기업들에게 단비와 같은 활력소가 될 것”이라며 “AI 등 미래 신산업 분야에 대한 투자 활성화는 차세대 기술 개발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중요한 디딤돌로서 벤처기업들의 투자심리 회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증시 활력 기폭제 기대감 = 증권시장도 호재로 받아들이는 기류다.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0.19%(5.55p) 상승한 2977.74에 장을 마감했다. 코스피는 전장 대비 0.58% 오른 2989.56으로 장을 출발한 뒤 장중 2996.04까지 치솟으면서 3000선에 근접하기도 했다.
코스피는 이달 들어 지난 13일을 제외하면 11거래일 동안 상승장을 시현했다. 특히 17일 장중 2998.62까지 올라 연고점을 갱신, 3000선 달성 기대감을 키우기도 했다. 다만 3000선을 코앞에 두고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 여파에 3거래일 연속 1% 미만의 강보합세를 유지하고 있다.
투자업계에서는 대외 불안 요소에도 코스피가 상승세를 유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가 내수 부양에 초점을 둔 대규모 추경안을 심의 의결해서다. 이같은 확장 재정은 유동성 공급을 이끌어 증시 밸류에이션 자체를 높이는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전날 정부는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30조5000억원 규모의 추경안을 심의 의결했다. 이번 추경안은 세출 확대 20조2000억원, 세수결손분을 메우는 세입 경정 10조3000억원으로 구성됐다. 추경안의 핵심은 △전국민 소비쿠폰 △건설경기 활성화 사업 지원 △특별 채무조정 패키지 등다.

◆형평성 논란도 = 장기 연체 취약층에 대한 빚탕감 방침에 대해서는 환영과 우려가 엇갈린다.
추경안에는 장기 연체채권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신설해 상환 능력을 상실한 장기 연체 채무자의 빚을 탕감하는 방안이 담겼다. 추경재원과 금융권 자금 등 총 8000억원을 투입,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산하에 채무조정기구(배드뱅크)를 설치한다. 여기서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원 이하의 개인 무담보채권을 일괄 매입하는 방식이다. 예상되는 총 매입채권 규모는 16조4000억원, 113만명이 수혜를 입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또한 7000억원을 투입해 소상공인·자영업자 채무조정 프로그램인 새출발기금을 강화한다. 기존보다 원금 감면 대상을 확대해 저소득 자영업자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취지다. 저소득 소상공인 10만1000명이 수혜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저소득 연체 소상공인의 약 40%에 해당하는 규모다.
정부가 이처럼 대규모 재정을 동원해 취약계층의 빚 탕감에 나선 것은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갈수록 채무를 상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서다. 정부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재기의 기회를 제공하고, 우리 사회의 통합 차원에서라도 이번 지원 대책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번 정책이 실현된다면 그동안 성실히 빚을 갚아온 사람들과의 차별 논란은 피하기 어렵다. 또 이번 대책으로 의도적으로 빚 상환을 늦추는 차주가 증가하는 등 도덕적 해이 우려도 있다.
◆“추경은 응급처방, 후속정책이 더 중요” = 나랏돈을 풀어 경기진작을 도모하는 만큼 집행과정이 엄정하고 공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법무법인 티와이로이어스 김대규 변호사는 “현 시점에서 재정을 경기진작의 핵심수단으로 상정 추경안을 꾸린 건 시의적절한 조치이지만, 지원금 지급과정이 불투명하거나 대상 선별과 집행과정에 작은 허점이라도 생긴다면 논란이 불가피하다”면서 “형평성 시비가 없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교한 집행과 구조적 정책개혁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크다. 추경으로 일부 내수진작의 효과는 있겠지만 한계가 분명해서다. 실제 2차 추경을 집행하면 올해 나랏빚은 1300조원을 넘어선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49.0%로 지난해(47.4%)보다 1.6%p 높아진다. 실질적인 나라 살림살이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 적자폭은 110조4000억원으로 24조원(0.9%p) 치솟는다. 이에 따라 GDP 대비 적자 비율도 -3.3%에서 -4.2%로 악화될 것으로 추산된다.
신승근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소장은 최근 토론회에서 “증세 없이는 계속 부채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저출산 고령화로 복지 수요가 늘고 생산가능연령이 줄면서 소득세 세수는 계속 감소할 것”이라며 “윤석열정부 시절 감행했던 부자 감세부터 원상 회복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정세은 교수도 “세수 기반이 너무 위축돼 이를 다시 회복시키지 않으면 양극화, 저성장 문제를 해소할 수 없는 상황으로, 증세 논의로 정면 돌파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